미로의 날들 [전자책]
무불(無不)

미로의 날들 [전자책]

迷路日誌

저자이문열
출판사무블출판사
출간일2025년 7월 1일
ISBN979-11-91433-73-9 (05810)

10,000원

About This Book

도서 소개

‘어둠의 아이들이 빛의 아들보다 지혜롭구나’

탐욕스러운 사장, 교활한 관리자, 비굴한 노동자의 민낯

거친 목재공장서 순진한 예비 교사가 겪는 부조리한 실상

 

이문열의 초창기 소설 『미로의 날들―미로일지迷路日誌』가 전자책과 오디오북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만난다. 지난 1984년 발표되고 같은 해 KBS 드라마로 6개월간 방영됐지만, 전성기 이문열의 소설 중에 유독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그간 작가의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금시조』처럼 진지한 작품만 접했다면,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는 탐욕스러운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이 소설을 추천한다.

『미로의 날들』은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예비교사가 임용을 기다리다 지쳐 먼 친척의 목재공장에 잠시 취직하면서 겪는 부조리한 실상을 담은 일종의 기업소설이다. 처음에는 주인공도 전횡을 일삼는 사장에 맞서 기껏해야 중졸인 인부들을 도우려 애쓰지만, 차츰 그들 이면에 가려진 비리와 이기적인 행태를 겪으며 현실에 눈을 떠 간다.

 

‘그림 같은 민중에 의해 어떻게 이런 추악한 시대가 진행되는가’

소설의 배경은 이제 중견기업로 성장하는 목재 가공업체. 재종이모부인 사장(박도근)은 주색잡기와 싸움질로 퇴학당해 고등학교 졸업장도 돈으로 겨우 받아낸 ‘반’ 건달이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 뺏다시피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받아 10년 남짓 사이 회사를 두세 배 규모로 키워낼 정도로 수완이 비상하다. 불과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거친 목재소 인부들을 반말에 욕 섞어가며 쥐잡듯 몰아대며 군림하고,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자본을 끌어 쓰고 ‘기획부동산’으로 큰돈을 번다.

외려 인부들 편이 된 나(이준태)는 작업장에서 다친 인부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모른척 발뺌하는 사장에 맞서 동료 인부들을 충동질하지만 오히려 순진한 샌님 취급하는 비아냥거림만 모두에게 듣는다. 반면 소소한 불이익에는 분노하며 집단행동에 나서는 인부들을 보며 나는 절망한다.

그 가운데 나는 2공장 영업서기(강병철)와 본사 총무과장(신광일)이 장부를 조작해 상당한 규모의 목재를 빼돌리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애인이기도 한 본사 미스 현(현미영)의 도움으로 나는 이 부정행위의 실체에 다가서지만, 번번이 터지는 급박한 사건과 신 과장 일당의 방해로 기회를 놓친다.

결국 사장에게 이 모든 부정행위의 전말을 고발하지만, 신 과장 일당의 계략으로 소송이 걸리고 파업에 들어간 공장은 엉망이 된다.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나는 회사를 그만둔다. 그렇게 교사가 된 나는 6년 만에 모두의 몰락을 상상하며 공장을 찾지만, 사장과 회사는 물론 신 과장 무리까지 모두 승승장구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회사는 엄연한 중견기업이 되고 사장은 회장으로, 그리고 횡령의 원흉이던 신 과장은 전무로 승진해 미스 현과 가정을 이루고, 강 서기는 사장에게서 뺏어낸 땅에 직매장을 열어 재미를 보고 있는 것. 다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단한 것은 인부들 뿐이었고, 나는 절망한다. “내 상상과 들어맞건 들어맞지 않건, 여전히 내게는 어떤 학습을 통해서도 목표물에 도달할 자신이 없는 미로와 같은 저쪽 세계였습니다.”

 

『미로의 날들』은 ‘폭력과 술수, 탐욕으로 얼룩진 괴물’ 같은 사장, 교활하게 횡령을 일삼는 중간관리자, 작은 이익에도 비굴해지는 노동자 모두를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그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작가는 개정판 서문에서 이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이른바 민중주의에 대한 거부가 그 같은 독자의 외면을 낳게 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민중은 결코 아름답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게 묘사되어 있다. 그 당시에는 민중이라면 불문곡직하고 미화하거나 과장하는 유행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 그 유행에 승복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나는 이 책의 그 같은 운명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작가의 말에 동의하는지는 예나 지금이나 독자의 판단이지만, 70년대 사회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미로의날들 #미로일지 #이문열 #기업소설 #민중주의거부 #횡령배임 #사실주의의탈을쓴낭만주의

About the Author

저자 소개

이문열(李文烈)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향인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수학했으며 대구매일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그해 겨울」,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독보적인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초기 대표작이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금시조』,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선택』, 『호모 엑세쿠탄스』, 『불멸』 등 다수가 있고,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 『변경』(전 12권), 『대륙의 한』(전 5권) 등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오늘의 작가상1979, 동인문학상1982, 대한민국문학상1983, 중앙문화대상1984, 이상문학상1987, 현대문학상1992, 21세기문학상1998, 호암예술상1999, 대한민국예술원상2009, 동리문학상2012 등을 수상했다. 또 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201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24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 세계 31개국 2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Table of Contents

목차

책머리에

1

2

3

4

5

6

7

뒷이야기

 

Preview

미리보기

언제부터인가 우리 문단에 널리 퍼져있는 편견 가운데 하나는 사실주의에 대한 과도한 신뢰, 또는 낭만주의에 대한 단죄에 가까운 부정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사실주의의 탈을 쓴 낭만주의가 정직한 낭만주의를 공격하는 꼴이 되는 식의 논의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책머리에>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때에 내 느낌은 그건 교육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모독이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극히 드문 예외를 빼면, 강사들이란 한결같이 돈에 걸신이 들어 아이들의 인기를 얻는 일이라면 벌거벗고 춤이라도 출 입시기술 판매상이거나, 심해 절도에 표류된 난파선의 생존자들처럼 황폐하고 절망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1>

 

그밖에 그들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이른바 ‘민중’이란 것의 실체였습니다. 요즈음의 유행은, 민중이라면 무조건 선량하고 정의로우며 고귀한 이상만 발견되면 서슴없이 몸을 던지는 것으로 그리는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정의定義로도 민중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는 그들에게서 그때 내가 본 것은 유감스럽게도 그런 그림 같은 보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천박한 이기利己와 비굴, 그리고 타락적인 성향과 물욕이었습니다. 언제나 나를 당황시키는 것은 그들의 턱없는 의심이었고,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신의조차 바로 받아주지 않는 비뚤어진 성격이었습니다. -<1>

 

“여기가 어딘 줄 아세요? 그야말로 노가다판이에요. 본사 영업부와 관리부의 몇을 빼면 회장, 사장부터 인부까지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또 들키지만 않으면 100만 원짜리 회사 물품도 단돈 1,000원에 내다 팔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 이곳을 학교로 착각하거나 누구를 선도하겠다는 생각은 마세요. 자칫하면 그게 올가미가 되어 낭패를 보게 돼요.” -<1>

 

내가 그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가 주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대개 과시와 공갈, 그리고 물품 공세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 같은 그 3개의 무기를 사용하는데도 그때그때의 상황과 분위기에 절묘하게 들어맞는 독특한 연기력 때문에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번번이 당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2>

 

그만큼 그날의 사건에서 그들에서 느낀 혐오와 경멸은 큰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 이상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짓밟고 조소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좀 엉뚱한 미움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분기시켜 자신들의 천박한 이기와 비굴을 반성시키고 싶은 순진한 분노였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더 고통받아야 한다, 더 학대받고 더 빼앗겨야 한다― … 얼굴을 붉히면서라도 그 그릇됨을 시인하는 날이 가깝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슬프게도 아직은 갈수록 굳어갈 뿐인 내 편견 가운데 하나가 그 일에 무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나를 위해서도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2>

 

“우선 그 자리부터 옮겨요. 엉거주춤 마주 앉아 남의 얘기하듯 하지 말고 건너와 제 곁에 나란히 앉으란 말이에요. 사랑이란 둘이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고, 나란히 앉아서 한 방향을 보는 것이래요.”

“그것도 진작 그러고 싶었는데,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백화점 점원 같은 말투도 집어치우구요.”

“알았어.” -<3>

 

“이 선생님이 문득 여기 눌러앉아 나무장사의 서기로 늙을 것 같아 쓸쓸하네요.”

그야말로 통렬한 일격이었습니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공격심리와 폭로의 열정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가를 한마디로 일깨워 주었던 것입니다. -<5>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날 일보를 적을 때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강 서기의 영업일지는 어느새 본사의 종합일보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자 나는 비로소 신 과장과 강 서기의 야합 형태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일보를 올릴 때는 사실대로 영업일지에 기록했다가 본사 경리부 신 과장이 일부를 빼돌리고 종합 일보에 기재한 뒤 그 내역을 주면, 다시 강 서기가 영업일지를 변조하는 방법으로 장부상의 하자를 없애고 그 빼돌린 목재의 대금을 둘이서 일정한 비율로 나눠 가지는 방법이었습니다. -<5>

 

말하기로는 사람보다 영악한 동물이 없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또한 사람처럼 어리숙하고 잘 속는 동물도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처럼 약삭빠르고 교활해 보이던 자도 한번 걸려들면 정말로 어이없을 만큼 엉성한 덫에 발목이 걸려 넘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광목재의 흥망이 걸린 대사업을 본사의 대학 나오고 똑똑한 직원이나 상무니 과장이니 하는 전문가를 제쳐놓고, 학력도 능력도 못 미더운 1공장의 서기들을 앞세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이 갈만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순간에 사장이 나서는 것만 보면 어지간히 조심스럽던 사람들까지도 어이없이 나가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6>

 

“… 내 친구 중에는 유부남만 전문으로 사귀는 애가 있거든요. 씀씀이도 좋고, 비밀이 절대로 보장되고, 여자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아무 때나 싫을 때 버려도 후환 없고…… 원칙으로는 나쁘죠. 그러나 키스 한 번만 허락하면 그걸로 남편이나 된 듯 함부로 구는 그 철부지 남자애들, 돈 좀 있다 싶어 보면 난잡한 부잣집 개망나니고, 아니면 찻값도 없는 빈털터리 청춘, 예의도 모르고 여자는 언제나 자기 감정대로만 다루다가 수틀리면 면도칼이나 들고 나서는 한심한 애들― 그게 우리가 흔히 만나게 되는 또래의 남자애들이란 데 문제가 있죠.” -<7>

 

… 고안된 구호란 역시 힘이 있었습니다. ‘부당 해고를 철회하라’는 것은 공장장을 편들다가 생산주임 눈 밖에 나서 일거리를 못 얻게 된 일용인부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듣는 사람에게 가슴 서늘한 죄책감을 일으켰습니다. ‘근로자에게도 인격적인 대우를’이란 말도 무엇이든 욕설과 폭행만으로 해결하려는 사장에 비하면 경어敬語와 다름없는 생산주임의 잔소리를 겨냥한 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구호로 듣고 보면 역시 사무직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대신 노동자들을 분기시키는 효과를 가졌습니다. ‘생활급 보장’이라는 것도 구호로는 반론의 여지가 없고, ‘복지시설 개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경험 없고 무능한 간부들은 물러가라’에서 ‘회사의 앞잡이들을 내쫓자’로 발전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7>

 

“… 마지막은 이 신광일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이오.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겨우 모가지를 붙여 준 것만도 감지덕지하는 줄 아는 모양인데, 그건 틀렸소. 나는 이 일련의 조치가 사장으로서 부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날 줄 알고 기다렸을 뿐이오. 하지만 정말로 내 목에까지 칼을 들이댄 거라면 문제는 달라요. … 7년 전 내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올 때만 해도, 회사의 전 장부라는 게 대학노트 몇 권이었소. 그걸 오늘날 산림재벌을 자처할 정도가 된 회사의 경리체제로 가꾼 건 바로 나요. …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갖다 쓴 몇 푼의 술값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지. 내 계산으로는 국세청의 추징금만으로도 사장은 지금 재산의 절반을 내놓아야 할 것이오.”

-<7>

 

다만 하나, 내 상상과 크게 틀리지 않은 것은 공장장과 제재소 인부들이었습니다. … 옷차림이 좀 나아지고, 그들의 참이 좀 풍성해졌다고 해도 그것은 사회 일반의 향상 때문이지 본질적인 상승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의식도 달라진 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들과 가볍게 술 한 잔을 나누는 동안에 그들이 우물거린 불평이란 기껏 새로 온 영업서기가 나이도 없는 게 너무 딱딱거린다는 따위였습니다. 내 상상과 들어맞건 들어맞지 않건, 여전히 내게는 어떤 학습을 통해서도 목표물에 도달할 자신이 없는 미로와 같은 저쪽 세계였습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