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his Book
도서 소개

“창작과 소설 읽기의 전범이 될 현대소설의 백미!”
작가 이문열을 사로잡았던 세계의 명작,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필독서!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이십여 년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이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엮었다.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3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새로워진 개정판이 되었다. 여기 세련된 장정과 판형으로 소장가치까지 한층 높였다. 지난 이십여 년간 그래왔듯이, 이번 개정판도 수많은 독자들을 세계명작의 산책로로 안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엮은이인 이문열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주요 문학잡지의 해외 특집란을 검토해 추린 후, 주제별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엮어내고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을 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수 없는 미진함이 남을지라도(혹은 그런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가는 이 선집이 작가 자신의 문학 체험의 한 결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 체험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한 전범이자 기준이 될 것이며, 소설 연구자들에게는 주제별 비교가 가능한 텍스트로서, 그리고 대중 독자들에게는 수준 높은 세계명작들의 풍성한 세계를 접하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수록된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계 수준의 문학 교양을 쌓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 우선 1권과 2권이 동시 출간되었다. 2권 “죽음의 미학”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을 모았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닥쳐오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되는 법이다.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다만 모두에게 다른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일 뿐이다. 우러를 것인가, 예비하고 다가갈 것인가, 혐오하고 두려워할 것인가, 할 수 있는 한 기피할 것인가. 우리 삶의 무수한 선택이 죽음에 대한 이 선택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자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워 삶을 이야기한다. 2권에 수록된 9편의 중단편을 통해 문학이 다루는 “죽음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본질적인 순간들을 체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스티븐 크레인의 <구명정>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발다사르 실방드르의 죽음>을 새로이 번역해 실었고, 기존에 중역했던 헤르만 헤세의 중편 <크눌프>는 원전을 재번역해서 수록했다. 그 외에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잭 런던의 <불 지피기>, 셔우드 앤더슨의 <숲속의 죽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샤를 루이 필리프의 <앨리스>, 바이올렛 헌트의 <마차>와 같은 세계적 문호들의 작품을 문장을 다듬어 새롭게 소개하고 있다. ‘죽음’과 ‘삶’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거장들의 손길을 거쳐 독자들에게 ‘미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독특한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명작 #해외소설 #중단편소설 #이문열 #작가지망생 #필독서 #글쓰기 #노벨상 #공쿠르상
Table of Contents
목차
『세계명작산책』 개정판을 내며
『세계명작산책』 초판 서문
머리말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한 속인을 통한 죽음의 성찰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죽음과 맞서는 인간의 태도 또는 자세
잭 런던
불 지피기
관념이 배제된 죽음의 과정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삶이 죽음의 일부인가, 죽음이 삶의 일부인가
셔우드 앤더슨
숲속의 죽음
삶을 인상적으로 진술하는 방식
헤르만 헤세
크눌프
삶의 최종심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흔
샤를 루이 필리프
앨리스
독점욕이 빚어낸 특이한 죽음의 양상
바이올렛 헌트
마차
염세적 세계관을 배음背音으로 한 기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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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 옮긴이 해설 –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The open boat」
다만 철저하게 무관심할 뿐인 자연의 여신 앞에서
―장경렬 서울대 명예교수, 스티븐 크레인의 「구명정」이 말해 주는 것
만 29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생애를 보냈지만,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 1871.11.1.~1900.6.5.)은 미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장․단편소설과 시를 창작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일찍이 윌리엄 포크너는 마크 트웨인을 현대 미국문학의 할아버지라고 한다면 크레인은 아버지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 바로 이 말에서 우리는 크레인의 문학사적 존재 의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규적인 학교 교육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크레인은 1891년 6월 만 20세가 되기 전의 나이에 대학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신문 기자와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1893년 장편소설 거리의 소녀 매기 Maggie: A Girl of the Streets를 발표했는데, 비록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오늘날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어서 1895년 또 한 편의 장편 소설 붉은 무공 훈장 The Red Badge of Courage을 발표함으로써, 크레인은 대서양 양안―즉, 미국과 영국―에서 주목받는 저명한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 저명한 작가가 된 크레인은 1896년 12월말 한 신문사의 요청에 따라 그 무렵 스페인의 압제에 항거하여 진행되고 있던 쿠바 독립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떠난다. 쿠바에 잠입할 목적으로 그는 12월 31일 저녁 선원 자격으로 플로리다의 잭슨빌에서 출항하는 증기선 커머도어(Commodore)에 승선한다. 전쟁 물자 및 쿠바 독립군 자원자를 싣고 출항한 이 배는 항구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모래톱에 얹히고 만다. 모래톱에서 끌어내어 물에 띄우려고 하는 가운데 배는 부분적으로 파손을 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틀 후에 마침내 침몰하고 만다. 배에 있던 모든 구명정이 동원되었으며, 크레인은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작은 구명정에 오른다. 파도와 힘겨운 싸움을 하던 네 사람을 태운 채 대략 30여 시간 동안 바다에 떠 있던 이 구명정은 마침내 데이터나 비치의 해안 가까이(약 800미터 전방)에 이르러 파도에 뒤집히고 만다. 마지막 사투 끝에 네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은 살아남고 한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
크레인은 이때의 경험을 기록하여 1897년 1월 6일 「스티븐 크레인 자신의 이야기 “Stephen Crane's Own Story”」라는 제목으로 신문사에 보낸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단편소설 「구명정 “The Open Boat”」을 창작한 다음 이를 스크리브너즈 매거진 Scribner's Magazine에 발표한다. 크레인의 단편소설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위기에 직면하여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느끼는 진정한 동지애와 신뢰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이 소설은 자연이란 인간에게 잔인하지도 자비롭지도 않으며, 그를 배반하거나 그의 앞에서 현자인 척하지도 않은 채 다만 무관심할 존재라는 깨달음으로 독자를 이끌기도 한다. 물론 자그마한 구명정에 몸을 싣고 있는 네 사람은 때때로 절망하기도 하고 때때로 자연의 여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힘을 합하여 모든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인내력과 잠재력이 얼마나 무한한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신문사 특파원은 크레인 자신의 소설적 형상화로 추정되며, 기관사와 함께 구명정의 노를 젓는 일을 맡아 한다. 그는 또한 많이 생각하고 깊이 느끼는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신문사 특파원이라는 직업의 영향으로 그는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지만, 배 안에서 싹튼 동지애를 감지하고 이로 인해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일깨워나가게 된다. 구명정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낸 고난의 시간이 그에게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이해됨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또한 여러 번 자연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자연이란 인간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한 존재임을 생생하게 깨닫는다.
증기선 커머도어가 침몰할 때 부상을 당한 선장은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로,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신중하고 주의 깊은 그에게 절대적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보인다. 이야기 속 대화의 분위기로 보아 그는 배에 함께 있는 다른 세 사람보다 나이와 경륜이 한결 높은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나머지 세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또 배의 항로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배의 안전을 위해 육체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없지만, 그는 결코 잠에 빠져들지 않은 채 항상 배의 안위에 주의를 기울인다.
기관사인 빌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바의 일을 끈기 있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다. 커머도어가 침몰하기 전 기관실에서 이중 당직 근무를 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그는 누구보다도 피로에 지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인 노 젓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묵묵히 주어진 바의 일에 충실했지만, 그는 해안에 거의 다 이르러 죽음의 길을 걷는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리사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면에서 볼 때 ‘어린아이답다(childish)’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항상 모든 일이 밝은 쪽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런 생각을 수다스럽게 입 밖으로 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위기감에 젖어 긴장해 있지만 그런 순간 엉뚱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파이에 대해 생각할 정도로 현실 감각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배 안으로 들이닥치는 바닷물을 퍼내는 일이다.
어찌 보면, 위의 네 사람은 서로 다른 개성의 소유자로,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험난한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소설은 단순한 모험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아울러,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을 냉정하고 절제된 필체로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빌리의 죽음을 통해 인간사란 결코 교과서적인 해답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사실 광포한 바다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대결을 다룬 이 소설에는 두드러진 플롯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극적인 반전을 통해 읽는 사람들을 특별히 긴장케 하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문학적 비유와 상징 및 생생한 정황 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생동감과 현장감을 잘 살리고 있다. 아울러,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자연과의 대결 속에서 절망에 빠져들기도 하고 희망을 갖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깊고도 뛰어난 문학적 호소력은 결코 소홀히 여겨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자는 이 소설을 해양 전도와 온갖 해양학 표본이 있는 서울대학교 해양학 실험실에서 번역을 시작했으며 또 그곳에서 번역을 마쳤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건물 개축 공사로 인해 잠시 연구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연대학 교수 한 분의 배려로 해양학 실험실 가운데 하나를 연구실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 도중 미국으로 건너가 태평양 연안에서 얼마 동안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 역자는 자주 들르던 바닷가 어느 주점의 발코니에서 파도와 갈매기와 펠리컨에 우두커니 눈길을 주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이 소설의 번역을 계속하기도 했다. 우연이긴 했지만, 이처럼 역자는 광포한 바다와 인간 사이의 싸움을 다룬 이 소설에 대한 번역을 바다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 또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진행했다. 해양학 실험실의 분위기와 태평양 연안의 바다는 이 소설을 번역하는 역자에게 실로 각별한 감흥을 불러일으켰으니, 번역을 하는 동안 내내 역자는 소설 속의 정경이 시시각각으로 현재화되어 역자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끝으로 제목 번역과 관련하여 한 마디 하는 것으로 짤막한 소개의 글을 마치기로 한다. 이는 너무도 유명한 소설이기에 작품 자체에 대한 번역이 시도된 바도 있지만 미국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제목만 따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된 적도 여러 번 있다. 이를 검토해 보면, 이 소설의 제목은 ‘난파선’이나 ‘무갑판선’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고, 또는 ‘구명선’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오픈 보트(the open boat)’란 갑판도 없고 햇빛이나 비바람을 피할 보호막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배, 그러니까 아무 설비도 없는 일종의 거룻배를 말한다. 물론 소설 속의 ‘오픈 보트’는 배가 조난을 당했을 때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작은 배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난파선’이라는 번역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인명 구조를 위한 작은 배 자체가 난파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무갑판선’이라는 번역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그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구명선’이 가장 적합한 번역일 수 있겠다. 하지만, ‘구명선’의 ‘선’(船)은 배를 지칭하는 일반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아주 작은 배의 느낌을 전하기에는 이 역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구명정’으로 번역해 보았는데, ‘구명정’의 ‘정’(艇)은 ‘작은 거룻배’를 뜻한다는 점에서 원래 제목의 의미를 가장 잘 전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배에 설치된 구명정들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구명정과는 느낌이 다른 것일 수 있다. 이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묘안이 없어 그냥 ‘구명정’으로 옮기기로 한다. 보다 더 적절한 우리말 번역이 있다면 역자에게 깨우침을 주기를 독자 여러분께 부탁한다.
■ 옮긴이 해설 –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죽음은 변덕스러운 삶의 가장 강렬한 체험
-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
죽음을 앞둔 한 친척을 관찰하는 소년의 시선과 그 죽음을 실제로 겪는 발다사르 자작의 내면적 변화를 극명하게 변주한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천식 발작으로 병과 죽음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프루스트 특유의 감수성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이 단편소설은 후에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위해 꼭 필요했던 ‘습작’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변덕스러운 심리 변화에 대한 묘사가 이 소설을 읽는 재미라 할 것이다. 특히 소년 화자가 어른들의 죽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언젠가 자신도 겪고 될 운명임을 깨닫고 죽음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무들과 산에 은둔을 시도하지만, 곧 어머니의 품에 안겨 천진난만한 소년의 세계로 돌아가는 모습은 코믹한 슬픔을 자아낸다. 반면에 자작은 자신이 곧 죽으리라고 생각했으나 한동안 회복의 기미를 느끼자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에 날카로운 불안감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욕망이 다시 일기 시작하고, 죽음을 기다리며 절망하던 그 동굴의 시간을 도리어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그것도 잠시 다시 병이 깊어지자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절망하면서도 질투와 열정 그리고 자작이라는 귀족 신분의 자존심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데 인간의 가장 변덕스러운 일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의 백미는 자작이 죽는 장면의 묘사이다. 의사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선포하는 순간, 지인들이 일제히 자작 곁으로 모여든다. 사람들의 눈에 자작은 이미 죽었지만, 자작은 그 순간에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키스해 주던 어머니, 저녁에 그를 자리에 눕히고 그가 잠들지 못할 때면 곁을 떠나지 않고 발을 덥게 해주던 어머니, 누이가 노래 부르던 정원에서의 저녁들, 그가 장차 위대한 음악가가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던 가정교사의 말, 그 아래서 약혼식을 올렸던 큰 보리수, 그리고 첫 약혼이 파혼되던 날도 눈앞에 보였다. 늙은 하녀에게 키스하고 처음 바이올린 음악을 듣던 생각도 났다. (…) 이 모든 것이 마치 들판 쪽의 창문으로 저절로 들어오듯 그는 (…) 아련하게 보고 있었다.”
죽는 ‘순간’에, 죽음이 선언되고 2초가 지나가기도 전에, 자작은 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들판 쪽 창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펼쳐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는 심장이 더 뛰지 않아 피가 돌지 않는 신체 내의 생물학적 변화라고 하는데, 예술작품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이기도 하다. 특히 프루스트의 시간에 대한 천착과 함께 이 생리학적 현상의 문학적인 의미를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은 왜 이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인간은 나이와 함께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감을 느낀다. 젊었을 때 시간을 길게 느끼는 것은 처음 경험하거나 낯선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을 매우 집중해서 경험하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어 반복 경험으로 뇌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시간이 사라진다고 한다. ‘죽는 순간’은 전 생애를 통해 처음 마주하는 낯설고 가장 강렬한 체험일 수밖에 없다. 뇌가 더없이 집중하기에, 몇 초에 전 생애가 영사막처럼 펼쳐지는 모양이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생전에 7편 5권 중 4편까지 발표했지만, 나머지는 유작으로 완간되었다. 1927년 『되찾은 시간』이 간행됨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작업이 완성된다. 죽음의 순간에 삶의 일생을 돌아보아 완성하는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의 방식과 유사하다.
■ 책 속으로
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럼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된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어떤 끝없는 상태 혹은 지루한 상황의 연속으로서 그 독특한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삶은 죽음 때문에 유한성에 갇히게 되지만, 또한 그 죽음 때문에 무한과도 견줄 만한 의미를 얻게 된다. -이문열 ‘머리말’ 중에서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너무나 끔찍했다.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이반 일리치는 어떤 치료법도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 이제 남은 것은 훨씬 지독한 고통과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도 알고 있고 이반 일리치도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그를 속이려 들 뿐만 아니라, 환자 자신에게까지 그 기만에 참여하기를 원하면서 그것을 강요하려 들었다. 이런 기만이 이반 일리치를 괴롭혔던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모든 것이 똑같았다. 희망의 불꽃이 번득였는가 싶으면, 다음 순간에는 절망의 바다가 사납게 출렁였다. 그리고 변함없는 통증, 변함없는 절망.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를 부르고 싶은 강렬하고 비참한 욕망을 느꼈다.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은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만일 운명이 여신이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일 작정이었다면, 왜 진작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겪은 온갖 수고를 덜어주지 않았단 말인가! 모든 게 다 터무니없다……. 하지만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운명의 여신이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일 작정이라니, 그럴 수야 없지.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 하다니, 감히 그럴 수는 없지.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일 수는 없어. 이렇게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 다음, 사람들은 구름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 나를 물에 빠뜨려 죽여봐라! 그리고 내가 퍼붓는 욕이 어떤 건지 한번 들어봐라!’ -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중에서
자연의 여신은 인간에게 잔인하지도 자비롭지도 않았으며, 그를 배반하거나 그의 앞에서 현자인 척하지도 않았다. 다만, 무심할 뿐이었다. 철저하게 무심할 뿐이었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우주의 냉담함에 압도된 채 자기 삶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결함을 직시하고는 짓궂게도 마음속으로 그 맛을 하나하나 음미한 다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기를 갈망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곧이어 닥칠 죽음의 위기에 대해 이처럼 여전히 무지한 상태에서도,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의 구분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그에게 명백한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그리고 만일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진다면, 품행과 어투를 바르게 고칠 수 있을 것이며, 남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나 함께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좀 더 선량하고 똑똑하게 처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중에서
동짓달에 비가 내리면 내 무덤의 꽃잎은 썩을 것이고, 6월의 햇볕에 꽃잎들은 타버릴 것이고, 내 영혼은 조바심에 언제나 울고 있을 것이오. 아! 언젠가 죽음의 기념일에 당신이 기억을 더듬어 내 사랑의 주변으로 오기를 바랄 뿐이오. 그땐 마치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의 얼굴을 얼핏 듣고 보고서도, 당신을 맞아들이기 위해 환희의 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오. -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중에서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크눌프는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한 소리로 시인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제가 아직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왜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질 못했을까요? 왜 올바른 인간이 되지 못했을까요? 시간은 충분했는데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 ‘크눌프’ 중에서
킬리만자로는 6,008미터 높이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한다. 그 산의 서쪽 정상은 마사이족의 말로 ‘누가예 누가이’라 불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서쪽 정상 가까이에는 미라 상태로 얼어붙은 표범의 사체가 하나 있다. 그런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얼 찾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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