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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만이 연출할 수 있는 비정의 미학 [세계명작산책7-사내들만의미학 <마테오 팔코네>]

사내만이 연출할 수 있는 비정의 미학 [세계명작산책7-사내들만의미학 <마테오 팔코네>]

쫓기는 사람 내치지 않는 유목민 전통… 이를 깬 열 살 외아들

설령 죄를 짓고 쫓기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숨겨주고 돌봐주기를 청해오는 자가 있다면 이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 유목민의 전통이다. 그 전통이 어떻게 코르시카의 율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마테오 팔코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와 같은 ‘둔피처遯避處 제공의 의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명사회에서는 오히려 범인은닉죄를 구성할 수도 있는 그 의무가 거기서는 사람값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같은 것이 되어 있다.

비록 열 살밖에 되지 않았으나 마테오의 아들 포르투나토도 그런 코르시카의 율법을 거의 본능적으로 숙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은전 한 닢을 받고서야 범죄자 자네토를 숨겨주는 데서부터 벌써 포르투나토는 그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의 율법과는 어긋나는 경향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장교의 은시계에 홀려 자네토를 내어줌으로써 그는 결정적으로 그 율법을 깨뜨리고 만다.

남은 건 치욕과 고통 뿐…단호하게 아들을 처형한 아비

마테오 팔코네가 얼마나 아들을 사랑했는지는 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내리 셋씩이나 딸을 출산한 뒤에야 낳은 아들이며 그 뒤 십 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해 결국은 유일한 아들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만 보더라도 그 아들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또 열 살의 나이는 흔히 어떤 종류의 죄에서든 면책의 특권을 누릴 만하다.

그렇지만 이 씩씩한 사내 마테오는 자신들의 율법에 따라 끝내 아들을 처형하고 만다. 그 율법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도 일생 몸을 담고 살아야 할 코르시카의 문화와 정서가 만들어낸 삶의 원칙이다. 그가 용서한다 해도 그걸 어긴 아들의 남은 삶은 뻔하다. 설령 아들이 자신들의 율법과 맞지 않은 경향을 고친다 하더라도 이미 저질러진 일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그의 남은 삶을 치욕과 고통에 빠뜨릴 것이다. 마테오 팔코네가 연출하는 비정非情의 미학美學 뒤에는 바로 그런 점을 헤아린 아비로서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지나 않은지.

들끓는 내면묘사 없이, 냉철한 묘사로 더 인상적인 비장미

「마테오 팔코네」는 사실주의의 대두 이후 자잘하고 심약해진 남자들과 그 일상적인 삶에서 일쑤 소재를 구해온 서구문학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자식을 쏘아 죽이는 아비가 겪어야 할 내면의 갈등을 한 줄 내비침 없이 얘기를 맺는 작가 메리메의 냉철함도 작품의 비장미를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었다. 감격무용론感激無用論을 주장한 메리메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화가 부모, 동화작가 할머니 예술인 집안… ‘프랑스 근대 리얼리즘 선구자’

작가 메리메는 양쪽 모두 화가인 부모와 『미녀와 야수』로 유명한 동화작가를 할머니로 둔 예술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극작가, 역사가로서도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처녀작은 『클라라 가줄의 희곡집』이며 『샤를 9세 연대기』라는 역사소설로 문명을 높였다. 장편으로 『콜롱바』가 있고 괴기소설류도 여럿 있으나 가장 찬사를 받은 작품은 1830년에 발표한 「마테오 팔코네」를 비롯한 단편들이었다. 「카르멘」과 「이중의 요새」 등이 유명하며 단편집 『모자이크』는 그에게 천부적 단편작가라는 평판을 가져다주었다. 스탕달을 스승으로 모셔 프랑스 근대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꼽힌다.

 

 

역사학, 언어학, 고고학서도 성취…나폴레옹3세 중용하기도

한편 프랑스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낸 메리메는 세속적으로도 적지 않은 성취를 누린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 언어학, 고고학 등의 연구로도 이름을 얻었고 제2제정 때는 나폴레옹 3세에게 중용되어 궁중을 드나들기도 했다. 그의 죽음도 프로이센·프랑스전쟁普佛戰爭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소식이 준 충격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전해질 만큼 그는 자기의 시대와 민족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은

1996년 초판 발행 후 20여 년 만에 전면 개정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첫 두 권 ‘사랑의 여러 빛깔’ 편과 ‘죽음의 미학’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사내들만의 미학’ 편이 출간되었다. 고대 서사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씩씩한 혹은 엄격한 사내들이 연출해낸 강건미와 비장미는 우리를 늘 감동시켜왔다. 고전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과, 영웅이기에 자주 겪게 되는 비극은 독자들에게 선망과 상찬, 분개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그 용기가 처절함에 이르고, 원칙에 대한 엄격함이 잔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전율조차 미학적인 감동과 닿아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고전 영웅담에서 기원하여 현대적 변형을 입긴 하였으나 여전히 씩씩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사내들의 이야기 열 편을 추려 실었다.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S. W. 스코트의 「두 소몰이꾼」, 두광정의 「규염객전」, 러디어드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에르난도 테예스의 「그냥 비누 거품」, 조셉 콘래드의 「무사의 혼」, 가산 카나피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는 모두 강건하고 비장한 사내들만의 미학을 품은 현대소설의 백미들이다.
소중한 아들과 사내의 원칙 사이의 선택을 다룬 첫 작품 「마리아 팔코네」에서부터 처절한 비정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카이 사건」에서는 죽음 앞에 담대한 사나이들의 피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종교적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우상숭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를 담아낸 「기우사」도 있다. 「두 소몰이꾼」에서는 단순한 문화의 차이조차도 불가항력적 비극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내들만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고, 「규염객전」에서는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해 천하를 이야기하는 장대함이 돋보인다. 죽음 앞에서의 태도로 진정한 의미에서 왕이 된 건달의 이야기를 그린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를 읽고 난 후에, 정의를 품었음에도 심약해서 오히려 악의 강건미가 돋보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냥 비누 거품」을 읽으면 진정한 위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명예와 용기와 위엄과 신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무사의 혼」과 미국적인 관점에 익숙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자에서 온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죽음과 광기와 피와 공포와 싸움이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된 작품이 많은 만큼, 상당히 강렬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강인한 사내들이 자아낸 장엄함을 전해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더더군다나 영웅들이 할리우드 영화나 만화를 통해 대중적으로만 소비되고 있고, 잘아지고 약해빠진 사내들의 낭패담이나 코미디가 진지한 문학의 대세를 이룬 요즘 시대에, 오랜 세월 문학의 묵직한 주제 중 하나였던 ‘사내다움’을 다룬 명작을 다시 읽는 것은 신선한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가자에서 온 편지」를 새롭게 실었다. 그간 미국과 유대인에 우호적인 시각에서만 조명되어온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팔레스타인 작가의 작품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는 완전히 새롭게 번역되었다. 그 외의 작품들 역시 요즘 시대에 걸맞은 문장과 편집으로 새롭게 정비해 실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작가 이문열을 만든 최고의 중단편 101편을 실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개정신판은 총 10권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책 「이문열의 세계명작 산책 7-사내들만의미학」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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