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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함과 일치됨의 미학 [세계명작산책7 – 사내들만의 미학 <사카이사건>]

단호함과 일치됨의 미학 [세계명작산책7 – 사내들만의 미학 <사카이사건>]

오직 죽음을 보다 값지고 아름답게…망설임 없이 죽는 사내들

어떤 대의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껴안는 경우에도 불안과 망설임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죽음을 맞게 된 스무 명의 사내들에게는 그런 흔적이 없다. 그들은 실로 단호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는 순간까지도 누구 하나 작은 흔들림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죽음을 보다 값지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이다.

물론 그들은 이미 다수 속에서 길러진 사람들이고 또 그런 상황에 떨어진 뒤에는 달리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스무 명의 사내들이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그런 단호함과 일치一致됨은 여전히 크나큰 감동이다. 세상의 여러 종족 중에서도 유독 일본인들이 자주 연출하는 별난 미학이다.

피학적인 동양적 광기가 연출하는 자학극

보기에 따라서는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조국이나 민족도 하나의 미신적인 이데올로기일 수 있고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도 광기 같은 게 어려 있다. 「우상 숭배자들」이 가학적인 서구적 광기에 휩쓸린 공격성의 형상화라면, 이 작품은 피학적인 동양적 광기가 연출하는 자학극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신이라도 가치 있는 미신이고 광기라도 아름다운 광기이다. 이 미신과 광기의 시대가 없었다면 오늘의 일본도 없었을지 모른다.

참혹한 사건을 냉정한 필치로 인상적 묘사

게다가 이 작품을 더욱 인상적이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냉정하기 그지없는 서술 태도다. 작가는 감탄하고 과장하지 않으려고 맹세라도 한 사람처럼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 참혹하고도 격정적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서술자의 감동이나 흥분을 드러내는 언사는 작품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원래 이 작품을 ‘죽음의 미학’ 편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도 미학보다는 사내다움의 일본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아 이쪽으로 돌렸다.

독일 유학한 군의관 출신…일본 현대문학의 기준 확립한 근대작가


작가 모리 오가이森鷗外는 대정大正 연간에 활동한 일본의 근대작가이다. 동경제대 의학부를 나와 일생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독특한 작품들을 남겼으나 한글 세대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모리 오가이는 원래 의사로 출발해서 소설가, 희극작가, 평론가, 번역가로 활동한 당대 최고의 문필가이다. 시마네 현 출신으로 본명은 하야시 다로. 동경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육군 군의관 자격으로 독일에 의학공부를 떠났다. 귀국 후 군의관으로 활동하던 시절, 독일 문학작품을 번역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창작소설 『무희舞姬』와 평론집 『월초月草』 등을 발표해 일본 현대문학의 기준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거두’ 손꼽혀

문학 비평뿐 아니라 의학 비평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그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군의부장으로 참전하면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끊는 일본 사내들의 숱한 자결과 자해를 목도한다. 이 같은 체험은 오가이의 향후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메이지 천황 시절, 사카이라는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프랑스군과의 충돌을 소설화한 작품 「사카이 사건」도 그의 여러 역사소설 중 하나다.

1916년, 54세의 나이에 일본 육군성 의무국장으로 퇴임하기까지 현역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새롭고 해박한 해외 사조, 문예 지식을 통해 동시대를 부단히 계몽하였던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거두로 꼽힌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은

1996년 초판 발행 후 20여 년 만에 전면 개정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첫 두 권 ‘사랑의 여러 빛깔’ 편과 ‘죽음의 미학’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사내들만의 미학’ 편이 출간되었다. 고대 서사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씩씩한 혹은 엄격한 사내들이 연출해낸 강건미와 비장미는 우리를 늘 감동시켜왔다. 고전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과, 영웅이기에 자주 겪게 되는 비극은 독자들에게 선망과 상찬, 분개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그 용기가 처절함에 이르고, 원칙에 대한 엄격함이 잔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전율조차 미학적인 감동과 닿아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고전 영웅담에서 기원하여 현대적 변형을 입긴 하였으나 여전히 씩씩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사내들의 이야기 열 편을 추려 실었다.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S. W. 스코트의 「두 소몰이꾼」, 두광정의 「규염객전」, 러디어드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에르난도 테예스의 「그냥 비누 거품」, 조셉 콘래드의 「무사의 혼」, 가산 카나피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는 모두 강건하고 비장한 사내들만의 미학을 품은 현대소설의 백미들이다.
소중한 아들과 사내의 원칙 사이의 선택을 다룬 첫 작품 「마리아 팔코네」에서부터 처절한 비정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카이 사건」에서는 죽음 앞에 담대한 사나이들의 피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종교적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우상숭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를 담아낸 「기우사」도 있다. 「두 소몰이꾼」에서는 단순한 문화의 차이조차도 불가항력적 비극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내들만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고, 「규염객전」에서는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해 천하를 이야기하는 장대함이 돋보인다. 죽음 앞에서의 태도로 진정한 의미에서 왕이 된 건달의 이야기를 그린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를 읽고 난 후에, 정의를 품었음에도 심약해서 오히려 악의 강건미가 돋보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냥 비누 거품」을 읽으면 진정한 위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명예와 용기와 위엄과 신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무사의 혼」과 미국적인 관점에 익숙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자에서 온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죽음과 광기와 피와 공포와 싸움이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된 작품이 많은 만큼, 상당히 강렬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강인한 사내들이 자아낸 장엄함을 전해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더더군다나 영웅들이 할리우드 영화나 만화를 통해 대중적으로만 소비되고 있고, 잘아지고 약해빠진 사내들의 낭패담이나 코미디가 진지한 문학의 대세를 이룬 요즘 시대에, 오랜 세월 문학의 묵직한 주제 중 하나였던 ‘사내다움’을 다룬 명작을 다시 읽는 것은 신선한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가자에서 온 편지」를 새롭게 실었다. 그간 미국과 유대인에 우호적인 시각에서만 조명되어온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팔레스타인 작가의 작품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는 완전히 새롭게 번역되었다. 그 외의 작품들 역시 요즘 시대에 걸맞은 문장과 편집으로 새롭게 정비해 실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작가 이문열을 만든 최고의 중단편 101편을 실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개정신판은 총 10권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책 「이문열의 세계명작 산책 7-사내들만의미학」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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