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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재주 [기우사 – 세계명작산책7. 사내들만의 미학]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재주 [기우사 – 세계명작산책7. 사내들만의 미학]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기우사…거룩한 희생제의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은 ‘사내들만의 미학’이라는 이 책의 표제와는 다소 먼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 기우사 크네히트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결의는 틀림없이 사내다운 강건함에서 나왔고 또 비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 읽은 뒤에 받게 되는 감동은 그것들이 빚어낸 아름다움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거룩한 것을 바라볼 때의 숙연함에 가깝다.

완결성 떨어지는 이야기 구성 불구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거기다가 이 작품은 단편으로 독립되어 완결된 것이 아니라 장편의 부록 같은 것이어서 짜임새도 적잖은 흠이 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너무 평면적이고 균형 잡힌 상승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유일한 안타고니스트로서 제자였던 마로가 야기하는 갈등과 긴장 또한 전체 구조로 보아 지나치게 빈약하다. 그리하여 크네히트의 진정한 안타고니스트를 초자연적인 힘 또는 풀 수 없는 섭리 같은 것으로 해석하면 이번에는 마로가 야기하는 갈등과 긴장이 오히려 사족蛇足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성격이 좀 달라지긴 해도 남성만이 연출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우사」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된다. 여성도 여러 고귀한 이름으로 자기 아닌 것에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 그러나 깊은 성찰과 투철한 결의 아래 이루어지는 자기투척自己投擲은 왠지 남성들만의 몫으로 느껴진다.

헤세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자연의 이면, 삶의 오의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 작품을 꼭 소개하고 싶었던 또 다른 까닭은 헤세의 특질이라 할 수도 있는 말하기의 기술에 있다. 헤세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것을 잘 말하는 재주가 있다. 자연이나 섭리의 가리워진 이면이며 삶의 오의奧義나 예술의 본질 따위에 대해 우리는 말하기 거북해하거나 기껏해야 이미 있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로 두려움 없이 말한다.

인색한 평가는 말하기 힘든 것을 말하려 한 헤세의 불행일뿐

헤세의 그 같은 재주는 오직 제도 안에서의 배움만이 확실한 것으로 믿고 있는 강단이론가들에게는 수상쩍게 비쳤을 것이다. 애초부터 말할 수 없거나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려 했기 때문에 받는 의심도 있다. 그가 말한 것들 중에서 추상성과 애매함을 걷어내고 지식이라고 하는, 검증된 그물만으로 건져낸 내용은 종종 실망스러울 만큼 소박하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도정道程일 뿐 깨달음의 내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거나 지극히 상식적이다. 이를테면 『싯다르타』가 보여주는 구도의 과정은 다채롭고 심각하지만 깨달음의 내용은 피상적으로 이해된 윤회설輪廻說에 그친다.

그렇지만 악의 있는 평자들이 그릇 이해하듯 그것이 헤세의 학문적 무지나 논리의 허약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애초부터 말할 수 없거나 말하기 힘든 것을 말하려 한 이의 불행일 뿐이다. 그리고 내게는 오히려 그렇게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이 경탄스러운 재능처럼 느껴져 특히 그런 쪽을 주목하라는 충고와 함께 이 작품을 소개한다.

 

헤세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에 삽입된 우화

이 작품이 실려 있는 만년晩年의 대작 『유리알 유희』는 헤세가 독학자로서 일생 받았던 의심과 설움을 앙갚음하려는 듯 대담하게 펼쳐 보인 지성과 철학의 모험이다. 그러나 그가 쓰고 있는 무기는 여전히 일생 그의 약점이 되었던 그 재능이며 그것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게 말미에 실린 「기우사」이다.

작가 헤르만 헤세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소개한 바 있어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은

1996년 초판 발행 후 20여 년 만에 전면 개정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첫 두 권 ‘사랑의 여러 빛깔’ 편과 ‘죽음의 미학’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사내들만의 미학’ 편이 출간되었다. 고대 서사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씩씩한 혹은 엄격한 사내들이 연출해낸 강건미와 비장미는 우리를 늘 감동시켜왔다. 고전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과, 영웅이기에 자주 겪게 되는 비극은 독자들에게 선망과 상찬, 분개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그 용기가 처절함에 이르고, 원칙에 대한 엄격함이 잔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전율조차 미학적인 감동과 닿아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고전 영웅담에서 기원하여 현대적 변형을 입긴 하였으나 여전히 씩씩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사내들의 이야기 열 편을 추려 실었다.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S. W. 스코트의 「두 소몰이꾼」, 두광정의 「규염객전」, 러디어드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에르난도 테예스의 「그냥 비누 거품」, 조셉 콘래드의 「무사의 혼」, 가산 카나피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는 모두 강건하고 비장한 사내들만의 미학을 품은 현대소설의 백미들이다.
소중한 아들과 사내의 원칙 사이의 선택을 다룬 첫 작품 「마리아 팔코네」에서부터 처절한 비정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카이 사건」에서는 죽음 앞에 담대한 사나이들의 피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종교적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우상숭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를 담아낸 「기우사」도 있다. 「두 소몰이꾼」에서는 단순한 문화의 차이조차도 불가항력적 비극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내들만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고, 「규염객전」에서는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해 천하를 이야기하는 장대함이 돋보인다. 죽음 앞에서의 태도로 진정한 의미에서 왕이 된 건달의 이야기를 그린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를 읽고 난 후에, 정의를 품었음에도 심약해서 오히려 악의 강건미가 돋보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냥 비누 거품」을 읽으면 진정한 위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명예와 용기와 위엄과 신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무사의 혼」과 미국적인 관점에 익숙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자에서 온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죽음과 광기와 피와 공포와 싸움이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된 작품이 많은 만큼, 상당히 강렬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강인한 사내들이 자아낸 장엄함을 전해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더더군다나 영웅들이 할리우드 영화나 만화를 통해 대중적으로만 소비되고 있고, 잘아지고 약해빠진 사내들의 낭패담이나 코미디가 진지한 문학의 대세를 이룬 요즘 시대에, 오랜 세월 문학의 묵직한 주제 중 하나였던 ‘사내다움’을 다룬 명작을 다시 읽는 것은 신선한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가자에서 온 편지」를 새롭게 실었다. 그간 미국과 유대인에 우호적인 시각에서만 조명되어온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팔레스타인 작가의 작품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는 완전히 새롭게 번역되었다. 그 외의 작품들 역시 요즘 시대에 걸맞은 문장과 편집으로 새롭게 정비해 실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작가 이문열을 만든 최고의 중단편 101편을 실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개정신판은 총 10권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책 「이문열의 세계명작 산책 7 – 사내들만의미학」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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