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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양보하는 의기 [규염객전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

천하를 양보하는 의기 [규염객전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

당대 전기소설…남성적 미학의 형상화

당대唐代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을 현대 단편소설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는 틀림없이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연성이나 신비적인 계기의 남용과 세부 묘사의 소홀은 단편소설의 현대성에 치명적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유사한 서사구조로서, 특히 남성적인 미학의 형상화로서는 현대의 단편소설에도 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보아 「규염객전」을 싣는다.

 

 

천하쟁패의 야망을 선선히 양보하는 호쾌함

규염객은 아마도 천하쟁패의 야망을 품고 힘을 길러가던 일방一方의 호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명天命이 그에게 없음을 알자 선선히 그 야망을 버린다. 뿐만 아니라 애써 쌓은 기반을 이정李靖에게 물려주어 잠재적인 경쟁자였던 당 태종을 돕게 한다.

현대인에게 관상이나 천명은 자칫 미신과 동의어로 들릴 테지만 그것이 확고한 믿음의 대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규염객이 일생에 걸친 야망을 그렇게 선선히 양보하는 것은 동양적인 남아의 의기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실낱 같은 가능성에 아등바등 매달리는 이 시대의 좀된 정치가들에 견주면 얼마나 시원스러운가.

 

 

 

『홍길동전』 율도국의 원형이라는 설도

이그 밖에 이 「규염객전」과 아울러 살펴보고 싶은 것은 우리 『홍길동전』의 결말과 연관된 논의이다. 일반적으로 홍길동이 율도국栗島國에서 이상의 나라를 여는 것은 그 원형을 『수호지』에서 찾는다. 그러나 살아남은 『수호지』의 영웅들이 섬라국暹羅國에서 이상의 나라를 여는 것은 명대明代의 『수호지』에는 없고 청대淸代에 쓰여진 『후수호後水滸』에나 보여 광해조 시절의 허균이 모방하기에는 연대가 맞지 않는다. 아마도 규염객이 남만에 세웠다는 부여국夫餘國이 원형이 되었을 것이다.

당말 유명한 도사 두광정의 작품

두광정杜光庭, 850~933은 당말唐末 5대代의 저명한 도사道士로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도교 의례道敎儀禮를 집대성한 책 『도문과범道門科範』 등이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은

1996년 초판 발행 후 20여 년 만에 전면 개정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첫 두 권 ‘사랑의 여러 빛깔’ 편과 ‘죽음의 미학’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사내들만의 미학’ 편이 출간되었다. 고대 서사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씩씩한 혹은 엄격한 사내들이 연출해낸 강건미와 비장미는 우리를 늘 감동시켜왔다. 고전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과, 영웅이기에 자주 겪게 되는 비극은 독자들에게 선망과 상찬, 분개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그 용기가 처절함에 이르고, 원칙에 대한 엄격함이 잔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전율조차 미학적인 감동과 닿아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고전 영웅담에서 기원하여 현대적 변형을 입긴 하였으나 여전히 씩씩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사내들의 이야기 열 편을 추려 실었다.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S. W. 스코트의 「두 소몰이꾼」, 두광정의 「규염객전」, 러디어드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에르난도 테예스의 「그냥 비누 거품」, 조셉 콘래드의 「무사의 혼」, 가산 카나피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는 모두 강건하고 비장한 사내들만의 미학을 품은 현대소설의 백미들이다.
소중한 아들과 사내의 원칙 사이의 선택을 다룬 첫 작품 「마리아 팔코네」에서부터 처절한 비정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카이 사건」에서는 죽음 앞에 담대한 사나이들의 피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종교적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우상숭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를 담아낸 「기우사」도 있다. 「두 소몰이꾼」에서는 단순한 문화의 차이조차도 불가항력적 비극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내들만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고, 「규염객전」에서는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해 천하를 이야기하는 장대함이 돋보인다. 죽음 앞에서의 태도로 진정한 의미에서 왕이 된 건달의 이야기를 그린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를 읽고 난 후에, 정의를 품었음에도 심약해서 오히려 악의 강건미가 돋보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냥 비누 거품」을 읽으면 진정한 위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명예와 용기와 위엄과 신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무사의 혼」과 미국적인 관점에 익숙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자에서 온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죽음과 광기와 피와 공포와 싸움이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된 작품이 많은 만큼, 상당히 강렬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강인한 사내들이 자아낸 장엄함을 전해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더더군다나 영웅들이 할리우드 영화나 만화를 통해 대중적으로만 소비되고 있고, 잘아지고 약해빠진 사내들의 낭패담이나 코미디가 진지한 문학의 대세를 이룬 요즘 시대에, 오랜 세월 문학의 묵직한 주제 중 하나였던 ‘사내다움’을 다룬 명작을 다시 읽는 것은 신선한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가자에서 온 편지」를 새롭게 실었다. 그간 미국과 유대인에 우호적인 시각에서만 조명되어온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팔레스타인 작가의 작품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는 완전히 새롭게 번역되었다. 그 외의 작품들 역시 요즘 시대에 걸맞은 문장과 편집으로 새롭게 정비해 실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작가 이문열을 만든 최고의 중단편 101편을 실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개정신판은 총 10권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책 「이문열의 세계명작 산책 7-사내들만의미학」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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