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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다운 죽음으로 왕이 된 건달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

왕다운 죽음으로 왕이 된 건달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

식민지 인도인을 등쳐먹던 영국 출신 건달들

다니엘은 피치라는 부인물副人物을 거느리고 인도를 떠도는 소小 악당 혹은 건달이다. 그들은 어떤 연유인가로 번영하고 부강한 본국 영국에서 소외되어 식민지를 떠돌며 위로는 토후들과 식민관료들을, 아래로는 힘없고 무지한 원주민들을 등치고 산다. 그러나 영국인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런 힘도 배경도 없는 만큼 때로는 구걸이나 좀도둑질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식총 20자루와 야릇한 우연이 만든 ‘왕’

왕이 되려 한 그들의 거창한 야심도 실은 사기나 도둑질을 위한 착상의 발전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식민주의 구도 하의 세계가 그런 그들의 터무니없는 꿈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카피리스탄이라는, 아직은 열강의 식민지로 분할되지 않은 미개지에서 그들이 가져간 신식 장총 스무 정과 야릇한 우연의 일치는 다니엘을 왕위에 앉게 해준다.

여기까지라면 이 작품은 한창 뻗어가는 대영제국의 기상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모험소설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다니엘의 욕심에서 비롯된 파국이 이 작품을 단순한 모험소설에서 건져내 인간성의 깊이 모를 심연 한 모퉁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명품으로 끌어올린다. 이 빈털터리 부랑자, 건달, 사기꾼을 한순간에 왕의 자리에 올려놓는 인격의 눈부신 고양高揚이다.

 

 

 

죽음으로 진정한 왕이 되는 건달의 아이러니

“이 망할 놈들아! 신사답게 죽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겠다!”

반란을 일으킨 원주민들에게 사로잡혀서 계곡의 줄다리 위로 끌려간 상태에서 그렇게 태연히 말하는 다니엘은 이미 지난날의 건달 사기꾼이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 흔들흔들하는 다리 한가운데까지 걸어가, “자, 이 빌어먹을 놈들아, 이제 다리를 끊어!” 하고 외칠 때 그는 진정한 왕이 된다. 빌어먹을 놈, 즉 거지는 그들이 건달로 떠돌 때조차도 마음 놓고 경멸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그런데 다니엘은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자들에게 가차 없는 경멸로 그렇게 명령하고 아득한 죽음으로 떨어져 내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답게 죽는 순간에 비로소 왕이 된다.

‘왕다움’은 사내들이 추구하는 이념미의 하나이다. 그 위엄, 용기, 신의, 관대함은 모두가 사내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거기다가 최후의 비장함까지 갖추어, 살았더라면 하찮은 건달로 식민지를 떠돌았을 한 사내를 모자람 없는 왕으로 만들고 있다.

액자구조, 1인칭 직접화법은 약점

이 작품을 전범으로 권하기에 망설여지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액자와 내용 모두가 일인칭에 직접화법으로 처리된 이중구성이 주는 부담 때문일 것이다. 특히 거의 직접화법으로 처리되는 액자 안의 내용은 속도감은 있어도 그만큼 거칠고 소략해 동화 같은 느낌까지 준다. 피치의 얘기는 간접화법 혹은 삼인칭으로 처리했으면 더 정연하고 인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정글북』으로 잘 알려진 인도 태생 영국작가 키플링

지은이 키플링은 인도 태생의 영국 작가로 주로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다. 영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가 지방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단편집 『산중야화』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정글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 밖의 작품으로는 보아전쟁에서 취재한 장편 『킴』과 『사라진 빛』 등 다수한 소설 외에 『판잣집의 속요』, 『병영의 노래』, 『7대양』 등의 시집이 있다. 만년에는 시 짓기에 전념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은

1996년 초판 발행 후 20여 년 만에 전면 개정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첫 두 권 ‘사랑의 여러 빛깔’ 편과 ‘죽음의 미학’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사내들만의 미학’ 편이 출간되었다. 고대 서사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씩씩한 혹은 엄격한 사내들이 연출해낸 강건미와 비장미는 우리를 늘 감동시켜왔다. 고전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과, 영웅이기에 자주 겪게 되는 비극은 독자들에게 선망과 상찬, 분개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그 용기가 처절함에 이르고, 원칙에 대한 엄격함이 잔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전율조차 미학적인 감동과 닿아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고전 영웅담에서 기원하여 현대적 변형을 입긴 하였으나 여전히 씩씩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사내들의 이야기 열 편을 추려 실었다.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S. W. 스코트의 「두 소몰이꾼」, 두광정의 「규염객전」, 러디어드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에르난도 테예스의 「그냥 비누 거품」, 조셉 콘래드의 「무사의 혼」, 가산 카나피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는 모두 강건하고 비장한 사내들만의 미학을 품은 현대소설의 백미들이다.
소중한 아들과 사내의 원칙 사이의 선택을 다룬 첫 작품 「마리아 팔코네」에서부터 처절한 비정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카이 사건」에서는 죽음 앞에 담대한 사나이들의 피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종교적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우상숭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를 담아낸 「기우사」도 있다. 「두 소몰이꾼」에서는 단순한 문화의 차이조차도 불가항력적 비극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내들만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고, 「규염객전」에서는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해 천하를 이야기하는 장대함이 돋보인다. 죽음 앞에서의 태도로 진정한 의미에서 왕이 된 건달의 이야기를 그린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를 읽고 난 후에, 정의를 품었음에도 심약해서 오히려 악의 강건미가 돋보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냥 비누 거품」을 읽으면 진정한 위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명예와 용기와 위엄과 신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무사의 혼」과 미국적인 관점에 익숙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자에서 온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죽음과 광기와 피와 공포와 싸움이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된 작품이 많은 만큼, 상당히 강렬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강인한 사내들이 자아낸 장엄함을 전해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더더군다나 영웅들이 할리우드 영화나 만화를 통해 대중적으로만 소비되고 있고, 잘아지고 약해빠진 사내들의 낭패담이나 코미디가 진지한 문학의 대세를 이룬 요즘 시대에, 오랜 세월 문학의 묵직한 주제 중 하나였던 ‘사내다움’을 다룬 명작을 다시 읽는 것은 신선한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가자에서 온 편지」를 새롭게 실었다. 그간 미국과 유대인에 우호적인 시각에서만 조명되어온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팔레스타인 작가의 작품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는 완전히 새롭게 번역되었다. 그 외의 작품들 역시 요즘 시대에 걸맞은 문장과 편집으로 새롭게 정비해 실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작가 이문열을 만든 최고의 중단편 101편을 실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개정신판은 총 10권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책 「이문열의 세계명작 산책 7-사내들만의미학」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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