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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태양 아래서의 선택 [가자에서 온 편지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

불타는 태양 아래서의 선택 [가자에서 온 편지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

60년대 끄트머리 또는 70년대 어느 땐가, 다시 중동전쟁이 터진 무렵이었다. 미국 동부의 어떤 대학에 팔레스타인 지역 출신의 두 유학생이 있었는데, 전쟁이 터진 다음 날 둘 다 등교하지 않아 알아보니 모두 기숙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사라진 까닭이 너무 달라 화제가 되었다. 알려진 바, 유태인인 대학생은 입대하여 참전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급히 돌아갔고, 팔레스타인 출신 아랍계 대학생은 본국에서 올지 모르는 전투 동원명령(혹은 입대영장)을 피해 잠적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은 곧 세계 유력 통신사나 서방 언론을 통해 널리 퍼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사례로 도배되듯 전 세계를 돌고 돌았다. 열 곱절도 넘을 인구에다 소련과 여러 아랍 동맹국들의 지원으로 별로 뒤질 것 없는 무기와 장비를 갖추고도 아랍동맹군이 여러 차례 전쟁에서 낭패를 보는 원인이 모두 그 두 유학생이 보여준 양쪽 젊은이들의 정신 상태와 연관 지어 설명되었고, 강 건너 불 보듯 중동전쟁을 구경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게 합리적인 설명처럼 들렸다.

민족주의 혹은 종족주의


그런데 근년 들어서야 동료 문인의 권유로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를 읽고 비로소 나는 내 단견과 경솔을, 터무니없는 부화뇌동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을 다시 내게 되어 다른 작품으로 바꿔 끼울 기회가 와서 이번 ‘사내들만의 미학’ 편에 끼워 넣기로 했다.

예부터 살아온 땅을 지키고 역사적 경험과 습속을 함께하는 족속을 민족이라 한다. 그리고 그 민족을 바탕으로 집단의 발흥을 도모하고 타민족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지향을 흔히 민족주의라 부른다. 근대의 발흥은 그런 민족주의적 지향끼리의 치열하고 첨예한 다툼에 힘입은 바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민족주의가 이미 종언을 고한 낡은 개념이거나 우매한 종족주의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런데 민족주의가 그 어느 쪽이든 민족주의의 투쟁적 역할은 지금까지는 주로 남자들이 수행해왔다. 그래서 가산 카나파니의 이야기는 ‘사내들의 미학’에 추가하기로 했다.

 

 

시오니즘 반대운동으로 강제추방…팔레스타인 해방전선 가입

가산 카나파니는 1936년 팔레스타인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와 유태인 이민정책(시오니즘 운동)에 반대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나중에는 일가 모두가 팔레스타인에서 강제로 추방당해 시리아 지역에서 난민으로 떠돈 것 같다. 난민수용소 미술교사로 재직할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였고 다마스쿠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시온주의 문학연구로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 무렵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과 연결되어 대학에서 쫓겨났으며 1956년에는 쿠웨이트로 옮겨 교사 일을 하며 러시아 문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 뒤 그는 신문사 편집장, 아랍민족주의 잡지 편집인이 되기도 하며 언론활동을 펼치는 한편, 1969년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인민전선(PFLP)에 가입하기도 했다.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은 특공대…무기는 펜, 싸움터는 신문


그사이 카나파니는 소설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여 『뜨거운 태양 아래서』(1962), 『너에게 남은 모든 것』(1966), 『하이파로의 귀향』(1970) 등의 작품으로 아랍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 뒤로도 그는 여러 편의 작품을 내어 서방 세계에도 소개되고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으나 1972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의해 암살되었다. 로드공항에서 있었던 일본 적군파 테러사건에 대응한 모사드의 작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향년 36세. 애절한 죽음이었다.
“그는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은 특공대였으며, 무기는 펜이었고, 싸움터는 신문의 페이지였습니다.”
—카나파니의 부고 기사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은

1996년 초판 발행 후 20여 년 만에 전면 개정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첫 두 권 ‘사랑의 여러 빛깔’ 편과 ‘죽음의 미학’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사내들만의 미학’ 편이 출간되었다. 고대 서사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씩씩한 혹은 엄격한 사내들이 연출해낸 강건미와 비장미는 우리를 늘 감동시켜왔다. 고전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과, 영웅이기에 자주 겪게 되는 비극은 독자들에게 선망과 상찬, 분개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그 용기가 처절함에 이르고, 원칙에 대한 엄격함이 잔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전율조차 미학적인 감동과 닿아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고전 영웅담에서 기원하여 현대적 변형을 입긴 하였으나 여전히 씩씩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사내들의 이야기 열 편을 추려 실었다.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S. W. 스코트의 「두 소몰이꾼」, 두광정의 「규염객전」, 러디어드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에르난도 테예스의 「그냥 비누 거품」, 조셉 콘래드의 「무사의 혼」, 가산 카나피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는 모두 강건하고 비장한 사내들만의 미학을 품은 현대소설의 백미들이다.
소중한 아들과 사내의 원칙 사이의 선택을 다룬 첫 작품 「마리아 팔코네」에서부터 처절한 비정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카이 사건」에서는 죽음 앞에 담대한 사나이들의 피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종교적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우상숭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를 담아낸 「기우사」도 있다. 「두 소몰이꾼」에서는 단순한 문화의 차이조차도 불가항력적 비극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내들만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고, 「규염객전」에서는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해 천하를 이야기하는 장대함이 돋보인다. 죽음 앞에서의 태도로 진정한 의미에서 왕이 된 건달의 이야기를 그린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를 읽고 난 후에, 정의를 품었음에도 심약해서 오히려 악의 강건미가 돋보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냥 비누 거품」을 읽으면 진정한 위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명예와 용기와 위엄과 신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무사의 혼」과 미국적인 관점에 익숙한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자에서 온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죽음과 광기와 피와 공포와 싸움이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된 작품이 많은 만큼, 상당히 강렬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강인한 사내들이 자아낸 장엄함을 전해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더더군다나 영웅들이 할리우드 영화나 만화를 통해 대중적으로만 소비되고 있고, 잘아지고 약해빠진 사내들의 낭패담이나 코미디가 진지한 문학의 대세를 이룬 요즘 시대에, 오랜 세월 문학의 묵직한 주제 중 하나였던 ‘사내다움’을 다룬 명작을 다시 읽는 것은 신선한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가자에서 온 편지」를 새롭게 실었다. 그간 미국과 유대인에 우호적인 시각에서만 조명되어온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팔레스타인 작가의 작품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는 완전히 새롭게 번역되었다. 그 외의 작품들 역시 요즘 시대에 걸맞은 문장과 편집으로 새롭게 정비해 실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작가 이문열을 만든 최고의 중단편 101편을 실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개정신판은 총 10권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책 「이문열의 세계명작 산책 7-사내들만의미학」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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