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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전율스러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1권 사랑의 여러 빛깔_에밀리를 위한 장미]

세월과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전율스러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1권 사랑의 여러 빛깔_에밀리를 위한 장미]

세월과 죽음을 뛰어넘은 에밀리의 한 서린 사랑 

침대와 구분조차 할 수 없게 썩어 있는 호머 배런의 시체 옆 베갯머리에서 한 가닥의 기다란 청회색 머리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아주 오래전 이 작품의 마지막 구절을 읽었을 때, 감동보다는 기괴한 전율에 빠져들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월과 죽음을 뛰어넘은 에밀리의 한 서린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같은 결말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작가의 안배도 아직 소설의 기교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던 젊었던 저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작가가 에밀리의 신체에 나타나는 세월의 변화를 느끼면서 반드시 머리칼의 색깔을 함께 묘사한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에밀리 양을 보았을 때, 그녀는 부쩍 뚱뚱해져 있었고 머리는 잿빛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음 몇 년 동안 머리는 점점 더 잿빛으로 변하더니 마침내 희끗희끗한 청회색을 띠게 된 다음 변색을 멈추었다. 일흔네 살의 나이로 그녀가 세상을 뜨던 날까지 그녀의 머리는 활동적인 남자의 머리색이 그러하듯 여전히 힘에 넘치는 청회색이었다.”

윌리엄 포크너 미국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

몰락한 남부 귀족여인의 마지막 자존심

사랑과 증오는 함께 간다고 합니다. 또 단순한 독법으로는 에밀리의 사랑을 동성연애자인 애인을 독살함으로써 독점하려 한 변태 심리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짧지만 효율적인 묘사의 장치들을 작가는 너무 많이 숨겨두고 있습니다.

한때는 그 번성이 눈부셨으나 지금은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의 전통, 하나의 의무, 하나의 걱정거리로 남겨진 몰락한 남부의 명문 거족 그리어슨 가의 마지막 후예—작가의 이 같은 설정은 이미 에밀리의 사랑이 단순하고 속되게 해석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녀에게 뜨내기 양키인 호머 배런은 아무런 흠이 없어도 결혼의 상대로는 애초부터 맞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그녀가 젊은 열정을 이기지 못해 그와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에밀리가 참 안됐어!”라고.

“우리가 에밀리 양의 타락을 믿고 있었을 때조차도 그녀는 고개를 아주 빳빳하게 들고 다녔다. 마치 그녀는 그리어슨 가문의 마지막 사람으로서 그녀의 위엄을 인정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재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 정도의 타락을 감수하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녀가 쥐약으로 사용하는 비소를 사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에밀리가 참 안됐어”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변심한 연인의 시신과 반백년 함께 눕는 전율스러움

호머 배런이 동성연애자였다거나 에밀리와의 결혼을 거부했다는 것도 풍문으로만 기술되어 있을 뿐 명확한 진상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에밀리가 그를 독살한 표면적인 동기는 불확실한 풍문으로만 처리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더욱 그 동기를 의심스럽게 하는 것은 그 비극적인 결말 뒤로도 이어지는 에밀리의 사랑입니다. 만약 호머 배런에 관한 풍문이 진실이라면 그는 에밀리와의 사랑에서는 배신자가 됩니다. 아무리 그녀가 변태라고 하더라도 그런 배신자에게 전율스럽도록 길고 치열한 사랑이 가능할까요. 오십 년이 넘는 세월과 죽음의 파괴력을 뛰어넘어, 이미 형태조차 없어져버린 연인의 시체와 죽기 며칠 전까지도 베갯머리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남자는 한때 포옹의 자세를 취한 채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사랑보다 오래 계속되는 길고 긴 잠이, 고통에 일그러진 사랑까지도 정복해버린 잠이 그를 능멸하고 있었다. 잠옷이었던 천 조각 아래에 그가 남긴 육체의 흔적이 보였는데, 그것은 그가 누워 있는 침대와 뗄 수 없을 만큼 뒤엉켜 붙어 있었다. 그의 몸 위에 그리고 옆에 놓여 있는 베개 위에도 끈질긴 먼지가 고르게 덮여 있었다. 우리는 또 다른 베개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던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는 자국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거기에서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그 희미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마르고 매캐한 먼지를 콧구멍으로 느끼면서 우리는 몸을 굽힌 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청회색을 띤 기다란 머리카락이었다.”

20세기 美문학 대표작가, 1947년 노벨상 수상작가 윌리엄 포크너

“에밀리로 하여금 그같이 끔찍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키게 한 것은 아마도 몰락하기는 해도 아직 온전히 스러지지는 않은 남부 귀족의 전통 혹은 아직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의 의무감까지 느끼게 하는 그리어슨 가문의 무게였을 것이다. 호머 배런을 독살한 뒤 홀로 늙어간 긴 세월의 처절한 외로움과 이웃의 천박한 호기심과 변하는 세태에 꿋꿋이 맞서가는 그녀에게서 저는 스산하면서도 장엄한 노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썩고 삭아가는 시체에서 건장하고 쾌활했던 연인을 느끼며 오십 년이나 곁에 누울 수 있었던 소름 끼치는 정신력도 수백 년 축적된 남부의 자존심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였을까요. 그리하여 그것을 위해 희생된 이 세상에서의 사랑은 오히려 더 단단한 이념미理念美로 되살아나 그녀의 남은 삶을 인도했던 것이나 아니였을까요.

지난 1980년대 중반 미 국방부의 초청으로 미국 전역을 돌게 되었을 때, 그 방문일정표에 내 개인적인 관심이 반영된 작가는 허먼 멜빌과 윌리엄 포크너 두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포크너가 그 생애 대부분을 보낸 미시시피주 옥스퍼드를 어렵게 찾아가 그가 살았던 집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 다소 지리하지만 문학적으로는 상당한 참고가 된 그의 대표적 장편 『음향과 분노』 때문이었는지 혹은 젊은 저를 전율시켰던 단편 「에밀리를 위한 장미」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대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20세기 전반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194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세기말적 탐미주의의 영향 아래 출발한 그의 문학은 만년으로 갈수록 예술적 깊이와 폭을 더해가 『음향의 분노』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의식의 흐름’에 합류하게 됩니다. 미국 문학에서는 역시 한 산맥 같은 작가로 깊이 있는 작가 연구를 위해서는 따로 시간을 내기를 권합니다.

☞ 책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권 – 사랑의 여러 빛깔_에밀리를 위한 장미」는

세계명작산책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20여 년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이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납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엮었습니다.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3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새로워진 개정판입니다.

엮은이인 이문열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의 목록을 추리고, 주제별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엮어내고 각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더했습니다.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수 없는 미진함이 남을지라도(혹은 그런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가는 이 선집이 작가 자신의 문학 체험의 한 결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 체험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한 전범이자 기준이 될 것이며, 소설 연구자들에게는 주제별 비교가 가능한 텍스트로서, 그리고 대중 독자들에게는 수준 높은 세계명작들의 풍성한 세계를 접하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수록된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문학 교양을 쌓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 제1권 “사랑의 여러 빛깔”은 사랑의 본질 혹은 속성을 다룬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에밀리를 위한 장미>의 주인공인 에밀리를 보면 그녀의 집착으로 인해 원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호머 배런과의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 귀족 사회가 몰락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꼿꼿이 자존심을 세우려는 태도, 사람들 역시 이러한 에밀리를 바라보며 은연중에 귀족으로서의 의무감 내지는 어떠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방관적인 태도와 에밀리와 서술자 ‘우리’가 의미하는 상징 등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처음 책을 낼 때부터 꼭 넣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넣지 못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와 오 헨리의 <잊힌 결혼식>을 새로이 번역해 실었고, 테오도어 슈트롬의 <임멘 호수>와 안톤 체호프의 <사랑스러운 여인>은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읽습니다. 그 외에도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의 <르네>,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 토머스 하디의 <환상을 쫓는 여인>, 알퐁스 도데의 <별>, 아니투어 슈니츨러의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스탕달의 <바니나 바니니> 같은 세계적 문호들의 정수를 새롭게 다듬은 문장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에서부터 치정 같은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만나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책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1권 사랑의 여러 빛깔_에밀리를 위한 장미」 가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조금 더 책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하여 책 제목을 눌러 도서 상세페이지로 이동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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