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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죽음 중 관념이 배제된 채 동사한 사내의 죽음의 과정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2권 죽음의 미학_불 지피기]

수 많은 죽음 중 관념이 배제된 채 동사한 사내의 죽음의 과정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2권 죽음의 미학_불 지피기]

  2017년 개봉한 감독 FX Goby의 동명 애니메이션

눈앞에 직면해서야 생각하게 되는 죽음의 의미

인간이 죽음을 만나는 형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이 인간을 덮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죽음으로 다가드는 형태입니다. 그 어느 편이든 죽음 앞에 서면 인간은 나름대로이긴 하지만 한 번쯤 죽음의 의미라든가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몸을 돌려 길을 계속 가다가 그는 얼마나 추운지 알아보기 위해 침을 뱉었다. 침이 날카롭게 파열음을 내며 얼어붙어 그를 놀라게 했다. 다시 침을 뱉었다. 그러자 채 눈에 떨어지기도 전에 침이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마이너스 50도에서는 침이 눈 위에서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공중에서 얼어붙는 것이었다. 마이너스 50도 이하는 분명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추운지는 몰랐다.” (p197)

관념이 철저히 배제된 죽음에의 관찰

그런데 이 「불 지피기」는 죽음의 이야기이면서도 죽음의 의미나 본질의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흔히 죽음에 따르기 마련인 거창한 관념들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시간도 과거나 미래와는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 바람에 그저 ‘사나이’로만 불리는 주인공은 거의 익명에 가깝습니다.

“확실히 추운 날씨라고 그는 생각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이 이 지방엔 때때로 무시무시한 추위가 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는 노인을 비웃지 않았던가! 이는 아무도 세상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알려주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p205)

그저 부주의했을 뿐인 주인공의 불행

우리는 그가 매우 추운 지방에 살고 있다는 것 외에는 어떤 경력을 가졌고 당장도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소간 조심성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성격조차도 특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추위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충분하지 못한 데다 조심성도 겁도 없는 사람’ 정도가 주인공을 기명화할 수 있는 정보의 전부입니다.

“불은 잘 탔다. 이제 안전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의 충고를 기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이 노인은 아무도 마이너스 50도 이하의 기온에서는 클론다이크 지방을 혼자 여행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매우 진지하게 세워놓았던 것이다. 그래, 그가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기 살아 있다. 혼자이지만 목숨을 건진 것이다. 저 노인네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여자 같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라면 겁을 내지 말아아 한다. 그리고 그는 멀쩡했다. 정말 사내대장부라면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p209)

한 별난 죽음, 동사의 과정

하지만 그 ‘사나이’가 극지에서도 유별난 혹한 속에 홀로 길을 떠난 이후의 상황은 감탄할 만한 세밀함으로 추적되고 묘사됩니다. 작가가 관심이 있는 것은 한 부주의한 인간이 영하 100도 이하의 추위에서 어떻게 죽어가는지의 과정입니다. 한 별난 죽음, 동사의 과정입니다.

그 과정의 추적과 묘사에서 배제된 것은 관념 뿐만이 아닙니다. 일체의 주관적인 감정도 배제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부주의나 실수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꼬지 않는 반면 동정이나 연민을 드러내는 법도 없습니다. 주인공 역시 그때그때 상황에 대한 반응뿐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 없이 죽음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가 신발 끈을 자르기 전에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잘못 아니면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전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나무가 없는 빈터에 불을 피웠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숲에서 잔가지를 끌어다가 불에 직접 던지기가 훨씬 쉬웠다. 그가 나무 아래에서 불을 피웠는데, 그 나무는 그 큰 가지 위에 눈을 이고 있었다. 몇 주일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잔가지를 끌어모을 때마다 진동이 생겨 약간씩 나무가 흔들렸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진동이었다. 저 높이 있는 나뭇가지에서 눈이 쏟아져내렸다. 이 눈이 그 아래쪽의 나뭇가지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거기에 있던 눈도 또 쏟아져내렸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나무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결국 눈사태처럼 커지면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 사나이와 불을 덮쳐버렸다. 불은 꺼지고 말았다.” (p210)

영상 Url : https://youtu.be/RBB06RLmCcU

기존 문학과는 다른 죽음의 묘사

「불 지피기」의 그 같은 특성은 앞서 우리가 본 죽음의 묘사들과 종류를 달리하는 미학입니다. 그 미학이 제게 깊은 인상을 주어 이 선집에 들게 했을 것입니다.

“희미하긴 했지만 죽음에 대한 중압적인 공포가 사나이에게 다가왔다. 이번 일이 단순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언다든지 혹은 손발을 잃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생사의 문제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포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자 그는 힘이 빠졌다. 방향을 틀어 수로 바닥을 넘어 오래된 희미한 길을 따라 뛰었다. 개가 합세하여 그를 따랐다. 평생 몰랐던 공포를 느끼며,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었다.” (p218)

잭 런던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

누구도 부인 못할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잭 런던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미국의 작가입니다.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했고 다양한 직업을 거친 끝에 등단했는데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립니다. ‘일생 마르크스와 니체와 다윈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한 작가’라는 비웃음이 있는가 하면, 자연주의 작가로서 미국 현대문학에서 일정한 지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옹호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편도 그의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오한이 좀 더 빨리 닥쳤다. 동상과의 싸움에서 지는 중이었다. 동상은 사방에서 그의 몸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다시 달렸지만, 100피트 정도 달리고는 멈추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최후의 고통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자제력을 회복했을 때, 그는 앉아서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다른 식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니라 목이 날아간 채 뛰어다니는 닭처럼,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이었다. 글쎄, 어쨌든 얼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그 사실을 점잖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리라. 이렇듯 새로 찾은 마음의 평화와 함께 처음으로 희미한 졸음이 다가왔다. 그의 생각으로는, 자다가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취당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얼어 죽는 것이 사람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더 험하게 죽는 방법도 많지 않은가.” (p220~221)

““노인장 말씀이 옳았소. 당신 말씀이 옳았던 것이오.” 사나이는 노인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사나이는 평생 맛본 가운데 가장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개는 그를 쳐다보면서 앉아 기다렸다. 짧은 낮이 거의 끝나면서, 긴 황혼이 서서히 다가왔다.” (p221)

☞ 책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 죽음의 미학_불 지피기」는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20여 년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이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납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엮었습니다.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3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새로워진 개정판입니다.

엮은이인 이문열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의 목록을 추리고, 주제별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엮어내고 각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더했습니다.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수 없는 미진함이 남을지라도(혹은 그런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가는 이 선집이 작가 자신의 문학 체험의 한 결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 체험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한 전범이자 기준이 될 것이며, 소설 연구자들에게는 주제별 비교가 가능한 텍스트로서, 그리고 대중 독자들에게는 수준 높은 세계명작들의 풍성한 세계를 접하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수록된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문학 교양을 쌓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 우선 1권과 2권이 동시 출간됐습니다. 2권 “죽음의 미학”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을 모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닥쳐오는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됩니다.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다만 모두에게 다른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러를 것인가, 예비하고 다가갈 것인가, 혐오하고 두려워할 것인가, 할 수 있는 한 기피할 것인가. 우리 삶의 무수한 선택이 죽음에 대한 이 선택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자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워 삶을 이야기합니다. 2권에 수록된 9편의 중단편을 통해 문학이 다루는 “죽음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본질적인 순간들을 체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에피소드 불 지피기는 알레스카 한가운데에서 대자연의 두려움에는 아랑곳 않고 금을 캐러 온 신참이 목적지인 캠프에 도착하기 위해 힘들게 걷다가 결국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품으로 볼 수 있는 소설이고 실제 잭 런던이 금광에 가 보았던 경험을 통해 생생한 묘사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의 주관적인 감정 없이 대자연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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