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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고양된 유미주의唯美主義의 결정結晶 [행복한 왕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순수하고 고양된 유미주의唯美主義의 결정結晶 [행복한 왕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유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가 지향했던 아름다움과 선善

 

이 작품의 줄거리는 흔해빠진 동화집이나 한때의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가가 오스카 와일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유혹 이외의 것에는 모두 저항할 수 있다”고 소리치고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의무는 자신을 최대한으로 치장하는 데 있다”며 일생을 방탕과 환락으로 일관했던 유미주의자였다. 그리고 때로는 탐미의 차원을 넘어 악마주의로 의심당하기까지 했던 그에게 이 작품의 순수하고 고결한 지향은 얼른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동화적인 선입견을 털고 다시 한 번 세심히 읽어 나가면 오스카 와일드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안 사람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틀림없이 세상의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보살피는 왕자의 거룩한 심성이나 거기에 감화된 제비의 갸륵한 희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조상(彫像)과 동물이다. 이 작품에서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을 찾는다면 그것은 그들 뒤에 숨어있는 작가이다. 아름다움과 선(善)을 합일시킨 그의 순수하고 고양된 유미주의다.

버려지는 왕자의 심장과 신의 구원에 담긴 의미

동화로 번안될 때는 흔히 생략되기 쉬운 이 작품의 결말도 우리가 작가에게 품고 있는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쓰레기터에 버려진 왕자의 심장이 결국 신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가망 없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름다움과 선(善)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작가의 만만찮은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화려한 복장과 기행으로 악명 높았던 오스카 와일드

 

앞서 말했듯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말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했던 영국 유미주의 운동의 선두 주자였다. 부유한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포토라 왕립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다닌 그는 이미 학창 시절부터 잔뜩 멋을 부린 복장과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악명을 떨쳤다. 심미적 열정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외쳤던 페이터에 흠뻑 빠져 있던 옥스퍼드 시절, 그가 미술품으로 장식된 여러 방들을 구경하면서 “아, 나의 푸른 도자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수 있다면!”이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작품보다 유명했던 미성년자와의 ‘동성애 재판’…출감 3년만에 별세

대학교 4학년 때 장시 ‘라벤나’로 뉴디 케이트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소설가로, 평론가로, 희곡작가로 영역을 넓혀가며 작품을 발표했지만 창작보다 널리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저 유명한 ‘동성애 재판’이다. 영국 재판 사상 가장 악명이 높았던 이 사건은 1891년 와일드가 10대 소년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러스를 만나는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육욕에 빠진 부도덕한 시인’으로 알려진 와일드와 어린 더글러스와의 교제는 여러 사람들, 특히 더글러스의 부친 퀸즈베리 후작을 자극했고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만남이 지속되자 결국 후작은 ‘미성년자와의 동성애’ 혐의로 와일드를 고소했다. 와일드는 법정에서 온갖 멋있는 말들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지만 증거가 드러나 2년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있다. 형을 마치고 나온 와일드는 영국을 떠나 ‘리딩 감옥의 노래’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재기를 노렸지만 전염병이 옮아 출감 3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 글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에 담긴 이문열 작가의 해설을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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