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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Details

이 작품은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결혼을 앞뒤로 한 사랑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은 과학과 합리에 믿음을 가지고 있던 시대의 사람과 세상에 대한 해석과 기대이다. 건강한 사랑, 건강한 삶,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다.

여인이 가지는 이름 중에서 가장 큰 이름이 어머니이다. 누군가의 자식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그 이름은 언제 들어도 정답고 그립고 가슴 저리다. 그것은 그 이름이 품고 있는 사랑 때문이다. 세상의 다른 사랑은 반드시 사심과 욕망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에는

동화로 번안될 때는 흔히 생략되기 쉬운 이 작품의 결말도 우리가 작가에게 품고 있는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쓰레기터에 버려진 왕자의 심장이 결국 신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가망 없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름다움과

몇 가닥의 길이 어수선하게 널려 기묘한 각도를 이루며 꼭 한 번은 지나온 길과 마주치게 되어 있는 가난한 예술가 마을은 그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버만 노인은 분명 낙오한 예술가다. 40년이 넘도록 붓을 휘두르며 살아왔으나 예술의 여신

도스토예프스키의 불행은 그가 ‘악령’을 통해 드러낸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의심스러운 눈길을 경직된 공산주의 정권이 악의로만 해석한 데 있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톨스토이의 선의지(善意志)는 대부분 추상적이고 일반화되어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사회주의의 이상을 분식(粉飾)하는 데 차용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까르삐오는 결코 선량한 인간이 못 된다. 자세한 경과는 쓰여 있지 않아도 그는 20년 징역에 해당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체포된 경위에도 그의 선량한 품성을 드러내는 구석은 없다. 거기다가 감옥도 그를 회개시키기는커녕 치열한 복수심만 길러주었을 뿐이었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만도 동양에서는 이미 상당한 미덕美德이 된다. 그 뒤에 가난하면서 남을 도울 수 있으면 이는 도道와 닿아 있는 어떤 경지로 추켜세워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어부의 아낙은 거창한 지각이나 자선 의식 없이 그런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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