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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정 혹은 흉기 같은 사랑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1권 사랑의 여러 빛깔_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치정 혹은 흉기 같은 사랑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1권 사랑의 여러 빛깔_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환상과 저주가 뒤엉킨, 추악한 배신 속 사랑

이 작품이 처음 내게 충격을 준 까닭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기괴미(奇怪美) 또는 추악미(醜惡美)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괴미는 결국 대공의 저주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데서 받은 느낌이며, 추악미는 모골이 송연할 만큼 철저한 배신을 미적으로 표현한 조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랑의 한 양태로서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을 말해보고 싶습니다.

일방적인 사랑 끝에 닿은, 순애보 아닌 치정사

모든 순교(殉敎)에는 많건 적건 타의가 섞여들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조차도 십자가 위에서 빌지 않았던가. “거둘 수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주옵소서”라고. 하지만 그래도 순교의 특질은 아무래도 자발적인 죽음의 선택에 있습니다. 신앙이 빌미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죽음이 순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순애(殉愛)도 그렇습니다. 사랑을 위해 죽는다고 하지만, 대개는 그 선택이 아니고서는 사랑을 지킬 수 없게 하는 상황의 강요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기꺼이 죽음을 껴안는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라이젠보그 남작의 불행한 사랑과 죽음은 얼른 보아 칙칙한 대로 한 편의 순애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서도 죽음에서도 순애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은 거의 타의로 부여된 것이고, 따라서 순애라기보다는 치정사(癡情死)란 말이 더 온당할 것입니다.

거짓된 환상, 가망없는 기대가 부른 비극

사랑은 여러 빛깔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여러 형태로 우리 삶에 기능하고 있습니다. 높게는 우리 영혼을 천상과 초월로 인도하고 낮게는 타락과 파멸로 이끕니다. 삶에 눈뜨게 하고, 열정과 야망을 불 지피며, 분노와 질투로 미치게 하고 때로는 자기부정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다른 가치에 패배하기도 하지만 또한 다른 가치를 짓밟기도 하고, 더러는 자기희생으로 결합하여 더욱 높은 단계로 승화하기도 합니다.

클래레 헬에 대한 라이젠보그 남작의 사랑은 환상과 희망으로, 그의 삶에 유익하게 기능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상은 거짓이었고 기대는 가망이 없었음이 드러나는 순간, 그 일방적인 사랑은 그의 삶에 치명적인 흉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은 대공의 저주가 그를 죽인 게 아니라 처참하게 드러난 사랑의 실상이 그를 죽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설을 읽는 목적은 교훈을 얻거나 도덕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이 단편을 사랑을 주제로 한 열 개의 전범 중 하나로 넣는 것은 그냥 들었으면 시시했을 치정담을 섬뜩하면서도 인상 깊은 예술작품으로 빚어낸 아르투어 슈니츨러에 대한 경의의 표시입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빈 상징주의 문학의 전형적인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의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의대를 졸업한 슈니츨러는 청년 시절 우연한 기회에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기 드 모파상을 읽은 후 창작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부친의 조수 노릇을 하며 집필한 희곡 『아나톨』이 평단의 반응을 일으키고, 뒤이어 발표한 작품 『연애유희』가 사람들의 관심을 얻자 그는 아예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사랑과 죽음을 주요 테마로 하는 슈니츨러의 작품에는 꿈과 낮, 환상과 현실이 엇갈리며 그려집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전공인 의학적 지식을 소설 창작에 도입, 주인공의 섬세한 내면이나 복잡한 연애심리를 적나라하게 해부한 데 힘입은 바가 큽니다.

문필가로서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자 슈니츨러는 당시 베를린을 중심으로 전성하던 자연주의 문학운동에 대항, 우미하고 섬세한 유미적 경향의 신낭만파 문학을 선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슈니츨러를 가리켜 빈 상징주의 문학의 전형적인 작가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워낙 활동력이 강했던 그는 한때 『베른하르디 교수』 같은 사회극을 쓰기도 했으나 이 분야에서 주목받는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랑과 죽음’의 문학에 관한 한 슈니츨러는 독특한 세계를 일구어놓았으며 희곡과 소설 양 분야에서 두루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흔치 않은 작가입니다.

☞ 책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권 – 사랑의 여러 빛깔_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은

세계명작산책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20여 년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이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납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엮었습니다.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3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새로워진 개정판입니다.

엮은이인 이문열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의 목록을 추리고, 주제별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엮어내고 각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더했습니다.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수 없는 미진함이 남을지라도(혹은 그런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가는 이 선집이 작가 자신의 문학 체험의 한 결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 체험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한 전범이자 기준이 될 것이며, 소설 연구자들에게는 주제별 비교가 가능한 텍스트로서, 그리고 대중 독자들에게는 수준 높은 세계명작들의 풍성한 세계를 접하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수록된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문학 교양을 쌓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 제1권 “사랑의 여러 빛깔”은 사랑의 본질 혹은 속성을 다룬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의 주인공인 라이젠보그 남작의 사랑은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서로 소통하며 사랑을 나누는 그런 사랑이 아닌 혼자만 일방적으로 계속해서 사랑하는 모습은 결국 그 끝이 타락과 파멸로 이끄기도 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사랑이란 서로 소통하며 같이 하는 것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속성 혹은 본질에 대한 중요성을 라이젠보그 남작을 통해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처음 책을 낼 때부터 꼭 넣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넣지 못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와 오 헨리의 <잊힌 결혼식>을 새로이 번역해 실었고, 테오도어 슈트롬의 <임멘 호수>와 안톤 체호프의 <사랑스러운 여인>은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읽습니다. 그 외에도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의 <르네>,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 토머스 하디의 <환상을 쫓는 여인>, 알퐁스 도데의 <별>, 아니투어 슈니츨러의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스탕달의 <바니나 바니니> 같은 세계적 문호들의 정수를 새롭게 다듬은 문장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에서부터 치정 같은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만나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책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1권 사랑의 여러 빛깔_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가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조금 더 책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하여 책 제목을 눌러 도서 상세페이지로 이동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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