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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적 세계관을 배음背音으로 한 기상곡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2권 죽음의 미학_마차]

염세적 세계관을 배음背音으로 한 기상곡 [이문열 세계명작산책_2권 죽음의 미학_마차]

<이 글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죽음의 미학」에 실린 작가 이문열의 해설을 인용한 것입니다.>

서구 전통과 다른 파격적 이야기 양식

이 「마차」를 얘기하려 들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번역에 관한 문제다. 나는 이 작품을 1960년대 후반에 제법 인기 있었던 어떤 세계명작단편선집에서 읽었는데 번역이 어찌나 조악했던지 끝까지 읽기가 고약할 정도였다. 원문을 보지 않고서도 당장 알아볼 수 있는 오역에다 용어 선택이 잘못되어 몇몇 등장 인물들은 직업이나 신분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거기에 다 번역자의 무성의로 한 따옴표 안의 대화에서도 어미가 통일되지 않아 경어에서 하대로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의미까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나중에 원문을 구해 읽어보리라 다짐했는데, 그리 되지 못하고 하마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차」를 이 책의 끄트머리에 얹는 것은 특수한 이야기의 형식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것은 관점이야 어떠하건 전통적인 형식이었다. 그러나 「마차」의 작가는 전설과 환상을 얽어 한 섬뜩한 죽음의 기상곡寄想曲을 만들어냈다.

염세주의적인 태도로 얘기하는 죽음

그러나 정황이 특수했어요. 가벼운 지갑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삶이라는 짐을 저한테 서 덜어준 사람을 심리하던 배심원들의 귀에 제 말이 들릴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 그들은 저를 살해한 불쌍한 인간에 대해 제가 아무런 원한도 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들이란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균형 감각에 눈을 뜨지 못한 존재들이니까요. 그거야 죽음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요. 원한을 품기는커녕 저는 저를 피곤하게 했던 생명의 줄을 그렇게도 깨끗하고 완벽하게 끊어준 그의 세련된 수술 솜씨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사실을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p511~512)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서구의 전통에서 조금 비켜서 있는 듯하다. 지금껏 우리가 읽은 대부분의 서구 작품들은 삶의 편에서 죽음을 보고 있으며 「불 지피기」를 빼고는 주로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과의 관계에 대해 얘기해왔다. 그런데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삶에 대해 그리 큰 애착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괴로운 삶을 빨리 마감하게 해준 가해자에게 감사의 뜻까지 나타내고 있다. 서구에도 염세주의적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런 식으로 작품에 반영된 것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이번 장경렬 교수의 번역도 작품의 진수를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자신 있게 수록한다.

어쨌거나 몬테카를로에서 내가 영위하던 삶을 그들이 중단시킬 무렵 나에겐 그 삶이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되어 가고 있었지요. 현란한 빛, 소음, 번쩍이는 장신구, 열기는 물론이고, 철도 광고판을 통해 선전되고 있는 저 푸른색의 웃는 듯한 무정한 바다도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p517)

애정 어린 시각으로 프랑스 하층계급 삶 다룬 소설가

작가 샤를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민중소설가이다. 중부 프랑스의 가난한 목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스무 살 때 파리 시청 공무원으로 취직한 그는 이때부터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소설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자신의 성장 체험을 바탕으로 당시 프랑스 하층계급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시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대표작 『뷔뷔 드 몽파르나스』를 비롯해 『어머니와 아들』, 『네 개의 슬픈 사랑 이야기』와 단편집 『작은 집 에서』 등은 하나같이 과장이나 설교의 어조를 통하지 않고 따뜻하고 인정에 찬 목소리로 당시의 생활을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민중을 향한 작가의 행보는 길지 못했다. 한창 창작열을 불태워야 할 35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화가 윌리엄 헌트의 딸이자 전기작가로도 유명한 바이올렛 헌트

작가 바이올렛 헌트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라파엘 이전 시기인 14~15세기의 이탈리아 화가들과 비슷한 양식의 그림을 그렸던 19세기의 영국 화가들 화풍의 화가인 윌리엄 헌트의 딸이다. 소설뿐 아니라 전기 작가로도 유명하다. 자서전 『하고 싶은 이야기』와 전기 『로제티의 아내』, 장편소설 『시든 잎의 하얀 장미』, 소설집 『불 안한 자들의 이야기』 등을 남겼다.

 

☞책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은…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20여 년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이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납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엮었습니다.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3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새로워진 개정판입니다.

엮은이인 이문열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의 목록을 추리고, 주제별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엮어내고 각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더했습니다.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수 없는 미진함이 남을지라도(혹은 그런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가는 이 선집이 작가 자신의 문학 체험의 한 결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 체험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한 전범이자 기준이 될 것이며, 소설 연구자들에게는 주제별 비교가 가능한 텍스트로서, 그리고 대중 독자들에게는 수준 높은 세계명작들의 풍성한 세계를 접하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수록된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문학 교양을 쌓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 우선 1권과 2권이 동시 출간됐습니다. 2권 “죽음의 미학”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을 모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닥쳐오는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됩니다.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다만 모두에게 다른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러를 것인가, 예비하고 다가갈 것인가, 혐오하고 두려워할 것인가, 할 수 있는 한 기피할 것인가. 우리 삶의 무수한 선택이 죽음에 대한 이 선택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자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워 삶을 이야기합니다. 2권에 수록된 9편의 중단편을 통해 문학이 다루는 “죽음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본질적인 순간들을 체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스티븐 크레인의 <구명정>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발다사르 실방드르의 죽음>을 새로이 번역해 실었고, 기존에 중역했던 헤르만 헤세의 중편 <크눌프>는 원전을 재번역해서 수록했습니다. 그 외에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잭 런던의 <불 지피기>, 셔우드 앤더슨의 <숲속의 죽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샤를 루이 필리프의 <앨리스>, 바이올렛 헌트의 <마차>와 같은 세계적 문호들의 작품을 문장을 다듬어 새롭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삶’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거장들의 손길을 거쳐 독자들에게 ‘미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독특한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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