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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랑, 조화로운 세계 [헤르만과 도로테아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건강한 사랑, 조화로운 세계 [헤르만과 도로테아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고전적 문장, 구태의연한 논설…그럼에도 극적이고 치밀한 구성의 미덕

망설이다가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이 책의 말미에 싣는다. 망설임은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현대 독자의 감각에 맞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장중하지만 구닥다리로 느껴지기 쉬운 문장, 진지하지만 한편으로는 뻔한 느낌이 드는 논설, 그리고 단조로운 구성 같은 것들은 틀림없이 이 시대의 젊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데 난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감각적이며 속도감 있는 문장에 익숙하고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의 방식에 더 자주 길들여져 왔다. 현대의 몇몇 반(反) 이론의 실험을 빼면 극적이고 치밀한 구성은 여전히 단편소설이 갖춰야 할 중요한 미덕이다.

갈등 구조도 현대소설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있음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희미하고 단속적(斷續的)이다. 삶의 비극성은 추상적으로 드러나고 주인공을 강화하는 안타고니스트도 없다. 갈등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양상으로서가 아니라 주로 어떤 원리나 초월적 정명(定命)과 연관되어서 나타난다.

독일 고전주의의 기품…건강한 삶과 사랑,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믿음

그런데도 이 작품을 굳이 여기에 싣는 것은 다 읽은 뒤에 받게 되는, 독일 고전주의의 기품 있는 노을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괴테 중년의 작품으로 괴테 자신도 이 작품에 적잖이 득의해했다고 들린다. 어쩌면 앞서 짚어본 여러 난점들도 작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너무 빨리 입맛을 바꾼 우리의 감각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결혼을 앞뒤로 한 사랑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은 과학과 합리에 믿음을 가지고 있던 시대의 사람과 세상에 대한 해석과 기대이다. 건강한 사랑, 건강한 삶,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다.

독일의 세계적 문호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주목


작가 요한 볼프강 괴테는 독일의 세계적인 문호이며 언론인, 화가, 변호사, 과학자, 정치가, 화가였다. 괴테 스스로 가장 훌륭한 문화적 토양이라고 일컬었던 독일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독서와 여행을 즐겼던 그는 프랑크푸르트 시장 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도시의 귀족들과 어울리며 일찌감치 예술적 감수성을 싹틔워 나갔다.

청년 시절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보내져 법학을 공부했으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중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신의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J. G. 헤르더와 만난다. 당시 스트라스부르에서 눈을 치료하고 있던 헤르더는 젊은 괴테가 예술적 안목과 감각을 기르는 방법,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글로 써내는 기술 등을 터득하도록 그를 자극하고 격려했다. 공부를 마치고 베츨러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괴테는 이 시기 경험했던 샤를롯테와의 연애를 그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불가해한 동시대인들의 불안과 불만을 드러내면서 맹목적인 ‘열정’이 불러오는 치명적인 상처를 이야기한 이 소설은 당시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부유한 은행가의 딸 릴리와의 약혼이 깨지고 상류 사교계에 대한 회의가 일자 그는 바이마르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달에게’ ‘사냥꾼의 저녁노래’ ‘바다 여행’ 등 유명한 시들이 쓰여졌으며 ‘툴레의 왕’ ‘마왕’ ‘어부’ 같은 발라드도 나왔다. 그러나 이곳도 괴테가 충분히 사색하고 대작을 완성하기에는 적합하지가 못했다. 그동안 사귄 정치, 문화계 인사들과의 교류가 그의 개인적인 사유를 수시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은 바로 이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실러와 교류로 성찰…삶-예술에 대한 경이로운 통찰 보여줘

이탈리아 여행에서도 별다른 정신적 위안을 얻지 못하고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를 반겨준 것은 뜻밖에도 실러와의 만남이었다. 이 두 사람은 삶을 인식하는 방법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지만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교류를 활발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괴테는 실러와의 편지 교환을 통해 정서적인 고독감을 치유하고 나아가 삶과 예술에 대한 경이로운 통찰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 수록된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바로 이 시기에 쓰인 작품으로 지고지순한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고전적 이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말년에 이르러서도 삶과 세계에 대한 괴테의 성찰은 끊이지 않았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관심은 과거가 아니라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진 미래에 집중돼 있으며 유럽이 아닌 전 세계의 운명에 대해 애정 어린 눈길을 던지고 있다.

초기 시집에서 ‘파우스트’까지 방대한 작품 수에 엇갈리는 평가

82년이라는 긴 생애를 통해 방대한 저작을 남긴 괴테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평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어떤 언어로도 괴테의 삶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는 초기 시집에서 ‘파우스트’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줬던 끊임없는 지성의 편력을 읽어가면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바쳐 세상을 살다 간 한 영혼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이 글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에 담긴 이문열 작가의 해설을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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